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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수호이-34 폭격기가 공습한 시리아의 이슬람국가(IS) 영역 내의 석유정제 공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가 공식 누리집을 통해 18일 공개한 영상의 한 장면이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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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화하는 ‘IS와의 전쟁’
(하) 중동의 지도를 다시 그려라
지난 9월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로이드 오스틴 미군 중부군 사령관은 시리아 내전에서 미국이 5억달러를 투여한 현지 반군 양성 프로그램으로 전투 현장에 참여하는 인원은 현재 4~5명뿐이라고 밝혔다. 반군 1명 당 몸값이 1억달러나 된다는 비아냥이 터져나왔다. 이는 시리아 내 친서방 반군을 활용하려던 시리아 내전 및 이슬람국가(IS) 정책의 실패를 상징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2014년 6월 이슬람국가가 선포된 이후 공습과 현지 병력 양성을 이슬람국가에 대한 전쟁의 양대 축으로 설정했다. 특히, 이슬람국가가 성장하는 토양인 시리아 내전에서 친서방 온건 반군진영을 강화하려고 5억달러나 쏟아부었으나, 그 돈은 모두 휴지처럼 사라졌다. 이 돈은 자유시리아군(FSA) 등 부패한 친서방 반군 진영 지도자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현장에서 싸우기보다는 터키나 유럽의 수도에 있는 호텔에서 지원을 얻어내려는 로비에 주력하고 있어, ‘호텔 참호 게릴라’라는 별명을 얻고 있다.
외부 군사력 아닌 내부 해결 모색
미국이 벌이는 이슬람국가와의 전쟁 작전명은 ‘내재적 해결 작전’이다. 외부의 군사력이 아니라 내부에서 해결책을 찾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부패한 반군세력에게 기대는 등 선택지가 협소하다. 이슬람국가를 둘러싼 주변의 복잡한 역학관계는 이슬람국가에 맞설 세력의 양성은 고사하고 그들이 성장하는 토양이 됐다.
무엇보다도 시리아 내전에서 바샤르 아사드 정권의 문제는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에서 최대 난제이다. 아사드 정권의 퇴진 여부에 대한 이견으로 국제사회는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에서 공동전선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변 수니파 정권들은 이란의 영향력을 차단하려고 시아파의 분파인 알라위파에 기반을 둔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이슬람국가 격퇴보다 우선시하고 있다. 이들의 이런 입장은 이슬람국가 등 반아사드를 표방한 반군에 대한 무차별적인 관대한 원조와 지원으로 이어졌다. 반면, 러시아와 이란은 이슬람국가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 대안은 아사드 정권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9월 들어 공습 등으로 시리아 내전에 개입해, 아사드 정권 존속을 돕고 있다. 이는 대이슬람국가 공동전선 형성을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테러는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에서 첫 요건인 공동전선을 구축할 수 있을지 고비가 되고 있다. 파리 테러는 이슬람국가의 수세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슬람국가는 지난 10월 이후 베이루트의 시아파 지구 연쇄 테러, 러시아 여객기 추락 테러에 이어 파리 테러를 벌이며, 외부로 향한 테러 투쟁으로 전략전술을 뚜렷이 변경했다.
미군은 이슬람국가와의 전쟁 1년 반이 넘으면서 현지 정보력을 강화해, 공습 파괴력을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미군의 대이슬람국가 공습은 다른 공습 작전에 비해서 자원 투입이나 출격 횟수가 상대적으로 낮았으나, 최근 들어 강화됐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전했다. 이는 정확한 목표물 선정 등 공습 파괴력에 미군이 자신이 붙었다는 뜻이다. 특히, 파리 테러가 일어나던 날 쿠르드족 민병대 페슈메르가는 미군의 공습 지원을 받으며 신자르 지역을 탈환하는 개가를 올렸다. 신자르의 상실로 이슬람국가는 수도격인 락까와 이라크 2대 도시 모술을 연결하는 보급로가 차단될 위기에 빠졌다. 쿠르드족을 지상군으로 활용하는 데 터키 등의 반발로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미국의 대이슬람국가 봉쇄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는 증거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라크 시아파, 시리아 동부 알라위파
이라크·시리아 북부 쿠르드족
IS 차지한 곳은 수니파 영역으로”
이라크전쟁 뒤 재편된 세력 인정
IS격퇴에 내부동참 명분 일도록
국제사회의 공동전선과 맥닿아
지금껏 아사드정권 두고 미·러 이견
반IS세력 양성커녕 성장토양 제공
파리 테러 뒤 지상군 투입 등 대이슬람국가와의 전쟁에서 전략전술을 바꾸라는 미국 조야의 비판에도 오바마 대통령이 꿈쩍않고 있는 이유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16일 “미국의 전략은 이슬람국가에 빼앗긴 영토를 다시 찾아오는 게 아니라 이슬람국가 세력이 부상할 수 있도록 만든 역학 구도를 바꾸는데 초점이 있다”며 “이것은 전통적인 군사작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군대를 보내 영토를 되찾을 수 있으나, 그것으론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세력을 잉태해낸 내재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며 “현재의 전략을 계속 견지할 만하다. 정치적인 효과를 보려하거나 미국을 강하게 보이도록 하는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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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이후 중동의 새로운 세력 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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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이 강조한 ‘역학 구도의 변경’은 지금 국제사회가 모색하는 대이슬람국가 공동전선과 맥이 닿는다. 공동전선은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에 참여할 관련 세력 모두의 공통분모를 찾아야 가능하다. 이는 이라크 전쟁 이후 중동에서 새로 형성되는 세력 재편을 인정해야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키신저·홀브룩 등 외교통 묘안
미국 외교가의 거물 헨리 키신저는 10월16일 <월스트리트 저널>기고에서 “중동에서 리비아, 예멘, 시리아, 이라크 4개의 국가가 독립주권 국가로서 작동을 멈췄다”며 이를 인정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사드 정권 타도보다 이슬람국가 파괴가 더 급박하고 △이슬람국가가 장악한 영토는 온건 수니파 세력의 통치로 돌려줘야 하고 △미래의 시리아는 아사드 정권이 기반한 알라위파와 수니파의 영역을 서로 인정하는 연방제 등이 돼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
중동에서 각축하는 열강과 현지 세력을 모두 만족시키는 세력균형을 새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럴 경우 대이슬람국가 공동전선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제안이다. 현재의 시리아와 이라크 국가가 사실상 허물어졌으니,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또 이라크 전쟁 이후 제기되는 ‘중동 지도 재작성론’과 맞물려 있다.
미국 외교가의 또 다른 거물인 리처드 홀브룩 전 외교특사는 이라크 전쟁 뒤 내전 상황을 타개하려면, 이라크를 수니파·시아파·쿠르드족 국가의 연방제로 분할해야 한다는 이라크 분할론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이라크 분할론은 중동에서 이라크 전쟁에 이어 리비아 내전, 시리아 내전,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이 계속되며, 중동 지도 재작성론으로까지 발전했다. 현재의 이라크와 시리아는 △이라크의 시아파 영역 △이슬람국가가 차지한 이라크와 시리아의 수니파 영역 △이라크와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 영역 △시리아 동부의 알라위파 영역으로 실질적으로 나눠졌으니, 이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1차대전 뒤 그은 국경이 분쟁 원인
이는 이슬람국가 치하에 있는 이라크와 시리아의 수니파 주민들에게 정치적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이슬람국가 치하의 수니파 주민들에게 대안을 줘서 이슬람국가 퇴치에 동참시킨다는 전략을 염두에 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뒤 영국과 프랑스가 중동에서 자신들의 세력권을 나눈 사이크스-피코 비밀협정에 따라 그어진 현재의 중동 국경이 분쟁의 한 원인이라는 주장을 바탕에 깔고 있다. 현재 이슬람국가의 영역은 시리아와 이라크의 수니파 아랍계 주민이 같이 살던 공간이었으나, 그 협정에 따라 시리아와 이라크로 분할됐다.
중동에선 이라크 전쟁 이후 계속된 전쟁으로 기존 국경이 지워지고 있다. 기존 국가 체제도 허물어졌다. 이슬람국가는 그 폐허 위에 등장한 산물이다. 이슬람국가와의 전쟁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 이후 중동에 새로 형성되는 세력 재편에 바탕한 해법이 없기 때문이다. 파리 테러 이후 국제사회는 그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고비에 섰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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