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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25 21:15 수정 : 2015.11.25 22:02

지난 24일 러시아 소치 흑해 리조트에서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과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소치/AP 연합뉴스

터키 ‘러시아 전투기 격추’ 파문

시리아 상공에서 24일 벌어진 터키군의 러시아 전투기 격추 사건으로 파리 테러 이후 모색되던 국제사회의 대이슬람국가(IS) 공동전선이 흐트러지고 있다. ‘이슬람국가 격퇴’를 명분 삼아 공습을 진행 중인 관련국들의 ‘동상이몽’이 뚜렷이 드러나면서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한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도 더 어려워졌다.

터키는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의 일원으로 미국에 공군기지를 제공하며 올해 9월부터는 공식적으로 공습에도 참여하고 있다. 문제는 터키의 주된 관심사가 이슬람국가 격퇴보다는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퇴출과 터키로부터 분리 독립을 꾀해온 쿠르드족 제어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쿠르드노동자당(PKK)의 인민수비대(YPG)와 페슈메르가 등 쿠르드 민병대는 이슬람국가와의 지상전에서 유일하게 성과를 내고 있는 세력이다. 터키는 시리아와 이라크 국경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이들이 터키 남부 쿠르드족 지역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터키 전투기들도 이슬람국가 격퇴를 명목으로 참전한 뒤 쿠르드족 거점 타격에 집중해왔다. 터키는 러시아 전투기까지 격추하는 등 영공 방어에 적극적이나, 막상 시리아와의 국경지대 방어에는 손을 놓는 이중적 모습도 보였다. 러시아 정치역학센터 이반 코노발로프 소장은 “터키-시리아 국경을 통해 이슬람국가 동조자들과 원유차량들이 오가고 있다”며 러시아 공습으로 이 통로가 막힐 것을 우려한 터키 정부가 공격에 나섰을 수 있다는 분석을 <타스> 통신에 내놨다.

터키
아사드 퇴출·쿠르드족 제어에 초점
국경 통해 IS 석유밀매·물자 오가
미국·프랑스 “아사드 정권 퇴진” 힘실어줘

러시아
중동 영향력 아사드 존속에 관심
탈출 조종사 사살된 것으로 알려져
투르크멘 등 반군 공격 명분 갖게돼

터키의 러시아 전투기 격추에 대한 상반된 주장

지난 9월부터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 개입은 터키를 자극해왔다. 터키는 오스만튀르크 시절부터 남하하려는 러시아와 크림전쟁 등 몇 차례 전쟁을 치르는 등 역사적으로 적대 관계였다. 시리아 내전을 계기로 러시아는 중동에서 가장 큰 교두보를 확보하고 영향력 확장을 노리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시리아 개입은 터키와 불편한 관계인 이란-시리아의 아사드 정권-레바논의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시아파 연대 강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러시아의 개입은 터키의 역내 영향력을 축소하는 한편 터키의 전통적인 안보 우려를 자극했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서방의 이슬람국가 격퇴전이 실패하고 있다며 지난 9월말 시리아 공습을 개시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공습은 대부분 이슬람국가가 아닌 아사드 정권에 맞서 싸워온 자유시리아군 등 친서방 반군 쪽에 맞춰졌다. 아사드 정권의 존속에 친서방 반군이 이슬람국가보다 더 위협이 됐기 때문이다. 러시아 전투기 추락도 최근 터키계 민족인 투르크멘족 거주 지역을 잇따라 공격하는 중에 발생했다. 투르크멘 민병대 세력은 아사드 정권에 맞서는 친서방 반군 진영 소속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4일 터키가 “등을 찔렀다”고 비난했다. 푸틴은 터키가 “우리와 즉시 필요한 연락을 취하는 대신 나토의 동맹국들과 이 사건을 상의했다. 마치 우리가 터키 전투기를 격추한 듯한” 행보였다고 비판하며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25일로 예정됐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의 터키 방문도 취소했다.

러시아 총참모부 작전총국장인 세르게이 룻스코이 중장은 “우리에게 잠재적 위협이 되는 모든 목표물은 파괴될 것임을 경고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시리아 반군들에 대한 폭격이 강화될 것임을 시사한다. 격추된 전투기 조종사 가운데 한명이 투르크멘 반군에 사살된 것도 러시아의 강경 대응을 부추길 수 있는 대목이다. 조종사 한명은 시리아 정부군에 구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워싱턴에서 만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이슬람국가 파괴에 동의하며, 이슬람국가 격퇴와 연계된 시리아 내전의 해결을 위해서는 아사드 정권이 퇴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 전투기가 터키의 지지를 받은 온건 반군을 추격하다가 터키 국경을 가깝게 날아 이런 문제가 지속적으로 생기고 있다”며 “러시아는 공습의 초점을 이슬람국가 파괴에 맞춤으로써 건설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투기 격추 사건으로 러시아와 터키가 무력충돌로까지 치닫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지만 파리 테러 이후 국제적인 공동전선을 구축하려는 노력은 주춤해질 수밖에 없다. 아흐메트 다우토을루 터키 총리는 25일 러시아를 “친구이자 이웃”이라고 부르며 양국 간의 긴장을 완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이날 “터키와 전쟁을 할 계획은 없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그는 “(터키의 공격이) 계획된 도발”이라며 “(터키와의 관계를) 심각하게 재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테러리스트들의 재원 마련 관련 정보 검토를 요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양국 외무장관이 조만간 만나는 데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아사드 정권의 진퇴를 놓고 의견 충돌이 계속돼 좀체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한 외교적 해법을 마련하지 못했는데, 이번 사건은 양쪽의 골을 더 깊게 패게 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26일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만날 예정이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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