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2.11 16:44
수정 : 2015.12.11 16:44
세르비아 ‘난민루트’ 4곳의 난민들
유럽을 향한 난민들의 ‘발칸 루트’에 한파가 몰아닥치고 있다. 겨울 바람보다 매서운 건, 지난달 13일 발생한 이슬람국가(IS)의 ‘파리 테러’라는 한파다.
세르비아 정부는 파리 테러 닷새 뒤인 지난달 18일부터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국적자만 난민으로 인정하고 나머지 나라 출신들은 모두 경제적 이주민으로 보고 국경을 열어주지 않기로 했다. 지난달 11일 발칸 루트에 있는 나라인 슬로베니아가 크로아티아와의 국경에 펜스를 설치하면서 이런 제한 조처를 가장 먼저 취했다. 발칸반도의 이웃나라들인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등이 도미노처럼 슬로베니아의 뒤를 따랐다. 이에 따라 발칸 루트로 들어오는 난민들의 숫자도 크게 줄어들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집계한 통계를 보면, 발칸 루트의 요충지에 자리잡은 세르비아로 들어오는 11월 난민수는 전달보다 3만3379명이 줄어든 15만2531명이었다. 20%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11월만 놓고 봐도 1~15일까지는 9만8418명(일평균 6561명)이 세르비아로 들어온 반면, 16일부터 30일까지는 5만4113명(일평균 3608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세르비아에서 한 달 반째 난민들을 돕고 있는 ‘국경없는 의사회’의 프란치스카(32) 인권담당관은 “지난 9월 중순 헝가리 국경이 닫혔고, 10월 중순에는 크로아티아 국경이 닫혔다 열리기도 하는 등 난민들이 국경이 닫힐 것에 대한 염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며 “유럽인들이 파리 테러와 난민을 연결시키며 난민을 잠재적인 적으로 생각하는 현상은 심히 우려스럽다”고 했다.
#1.‘바다에서 온 난민들의 집합소’ 세르비아 프레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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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오후, 세르비아 프레셰보 기차역에서 난민소녀들이 크로아티아와 인접한 국경도시 시드로 향하는 기차에 탑승해 창밖을 내다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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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혈혈단신으로 세르비아까지 온 시캅(20·가명)은 ‘파리 테러’ 이후 난민에 대한 유럽인들의 적대적 시선이 억울하다. 시캅은 탈레반에 의해 강제징병당할 것을 우려한 부모님의 권유로 홀로 난민 길에 올랐다. 그는 “테러리스트는 난민뿐 아니라 일반시민으로 가장할 수도 있다.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단지 평화로운 삶을 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그는 국제구호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이 세르비아 프레셰보에 마련한 난민보호소에 머물며 스웨덴으로 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시캅은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특히 지난달 10일, 세르비아에 도착했을 땐 한 달 남짓 피난 길에서 잘 먹지도 극심한 스트레스까지 받고 있는 상황에 복막염까지 그를 덮쳤다. 국제단체들의 도움으로 다행히 응급수술을 받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시캅이 죽을 고비를 넘긴 건 이때만이 아니었다. 터키에서 그리스로 오는 길, 30여명이 탄 고무보트에 구멍이 뚫려 보트 안에 들이차는 물을 손으로 퍼내면서 바다를 건너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시캅은 장차 머나먼 북유럽 국가 스웨덴으로 갈 수 있길 희망하고 있다. 그는 “스웨덴에 가 내가 도움을 받았듯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시캅이 머물고 있는 세르비아 프레셰보는 ‘바다에서 오는 난민들’의 집합소다. 터키에서 배를 타고 그리스로 들어온 난민들이 마케도니아를 거쳐 세르비아로 들어와 이곳 정부 운영 난민등록소로 찾아온다. 하루 평균 밀려드는 난민 수만 5000~8000명 선이다. 난민들은 이곳에서 독일, 스웨덴 등 난민을 받아주는 유럽 국가로 향하는 다음 통과국인 크로아티아로 가기 위해 접경도시 시드로 가는 버스와 기차를 기다린다. 버스비는 1인당 35유로, 기차 요금은 15유로. 버스를 타면 시드까지 6시간이 걸리지만, 기차로는 11시간이나 걸린다. 속도는 느려도 요금이 저렴해 가난한 난민들은 주로 기차에 몸을 싣는다. 기차는 버스와 달리 무일푼인 난민들을 무료로 태워주기도 하는 ‘인심’이 살아있다.
#2.‘육지에서 오는 난민들의 집합소’ 세르비아 디미트로브그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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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오전, 마케도니아 국경을 넘어 세르비아로 온 한 난민소년이 구호품으로 받은 장화 2켤레를 품에 안고 프레셰보 난민등록소로 가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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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동쪽, 불가리아 국경과 인접한 디미트로브그라드는 ‘육지에서 오는 난민들’의 집합소다. 이곳도 국경 인접지역이라 정부 난민등록소가 있다. 난민들은 이곳에서 기차를 타고 수도 베오그라드를 거쳐 다시 시드로 이동한다.
하루 20~50명의 난민들이 이곳으로 들어온다. 프레셰보보다 훨씬 적은 수다. 그리스로 가는 보트 삯을 내지 못하는 가난한 난민들이 도보로 이동하는 루트다. 주로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불가리아의 산을 넘어 이쪽으로 들어온다. 산이 매우 험준해 다치는 사람들이 많다. 난민들은 이 산을 ‘정글’이라고 부른다. 1600㎞ 이상을 걸어서 이동하다 보니 발병난 사람들이 태반이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영국인 약사 에린 켈리(25)는 “발냄새가 심한 난민이 있어 살펴보니 왼쪽 발꿈치 바깥 쪽에 지름 4㎝ 크기의 구멍이 난 채로 썩어 있었다. 성인 남자들의 경우 이런 경우가 다반사고, 발목 뼈가 무른 아이들은 걷다가 발목이 꺾여 발이 퉁퉁 부은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 했다.
난민들에게 정글 만큼 무서운 존재가 불가리아 경찰이다. 걸핏하면 때리고 재물을 빼앗는 일도 많아 난민들 사이에서 불가리아 경찰은 악명이 높다. 넉달 전 가족 셋을 이끌고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난민 행렬에 오른 시하르(37·가명)는 불가리아 경찰에게 붙잡혀 걷지도 못 할 정도로 오른쪽 종아리를 세게 얻어맞았다. 그는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불가리아 감옥에 3개월 동안 갇혀 있다가 풀려났다. “내 친구는 달려든 경찰견에게 물어뜯겨 팔뚝의 살점이 한 웅큼 뜯겨나갔다”며 시하르가 치를 떨며 말했다. 그가 고향을 떠나기로 한 건 아들(12)이 납치된 경험을 한 뒤부터다. 유괴범들에게 2만5000달러를 주고 아들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고향에선 “불안해선 살 수가 없어” 고향을 등졌다.
#3. 국경상황 따라 달라지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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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오전, 마케도니아 국경을 넘어 세르비아로 온 시리아인들이 영하 1℃ 기온과 매서운 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 탓에 담요를 뒤집어 쓴 채 프레셰보 난민등록소로 가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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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크로아티아 방향으로 난민들의 고정 루트인 수도 베오그라드는 국경 상황에 따라 난민들의 들고 남이 급격하게 달라지는 곳이다. 9월 중순 이전만해도 베오그라드엔 난민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헝가리가 국경을 차단한 이후, 난민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지난달 24일, 베오그라드 역에서 시드로 향하는 오후 1시20분 난민 기차엔 난민 4명만이 타고 있을 뿐이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설치한 난민물품지원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엘스는 “1~2주 전만해도 찾아오는 난민이 100여명은 됐는데, 오늘은 2명밖에 없었다. 국경 봉쇄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난민들이 베오그라드에 머물지 않고 바로 시드로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 사이드(15·가명)는 이곳에서 비에 흠뻑 젖은 옷을 대신할 구호품 옷을 받았다. 그는 “몸을 조금만 녹인 뒤 바로 기차를 타고 시드로 이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드는 한시라도 빨리 다음 기착지인 크로아티아로 넘어가고 싶어 했다.
#4. 난민들의 집결지 세르비아 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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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오후, 세르비아 프레셰보 기차역에서 난민들이 크로아티아와 인접한 국경도시 시드로 출발하는 오후 5시 기차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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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접경지역인 시드는 세르비아로 들어온 모든 난민들이 모이는 ‘깔때기’ 같은 곳이다. 터키-그리스-마케도니아를 거쳐 세르비아 프레셰보에서 버스와 기차를 타고 온 난민들과 터키-불가리아를 거쳐 디미트로브그라드에서 온 난민들이 베오그라드를 거쳐 결국엔 이곳에서 다 모이게 된다. 하루에 이 인원만도 5000~6000명에 육박한다. 난민들은 이곳에서 무료 기차를 타고 크로아티아의 슬로본스키브로드로 이동한다. 시리아인 므하르(35·가명)는 스웨덴에 먼저 가 있는 아내와 5살배기 아들을 만나러 브로커에게 3000유로를 주고 이곳까지 왔다. 그는 “시리아는 아름다운 나라”라며 “독재정권이 물러나고 상황이 안정되면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다시 시리아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드에서 차로 20분 거리 아다셰비치는 난민을 실은 버스들이 주차돼 있었다. 시드에 난민 버스를 수용할 공간이 충분치 않아, 버스들이 이곳에서 대기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오후에도 난민 버스 10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11월 초만해도 70대 정도의 버스가 몰려와 주차할 곳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한켠에 ‘인터에스오에스’(interSOS)라는 국제구호단체가 트럭을 세워놓고 난민들의 휴대전화를 한번에 60개씩 충전해주고,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 루이아카딘(26·가명)은 “여기서 휴대폰을 충전하고 페이스북 접속을 할 수 있게돼,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있는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안부를 전할 수 있었다”며 웃었다.
김규남 김성광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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