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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트로스 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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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프리카 출신 총장…반기문 “가장 혼란한 시기에 유엔 이끌어”
유엔 평화유지활동 확장…미국과 충돌하며 재선 좌절
제6대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전 사무총장이 16일(현지시간)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냉전 붕괴 후 새로운 세계 질서가 형성되고, 동시에 소말리아·르완다·보스니아 사태로 유엔 평화유지활동이 확장되기 시작한 1992∼1996년 유엔을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아프리카 출신의 첫 유엔 수장이었으며, 미국과 충돌하다 결국 미국의 거부로 재선이 좌절된 사무총장이기도 했다.
유엔은 이날 부트로스 갈리 전 사무총장이 조국인 이집트 카이로에서 사망했다고 대변인을 통해 공식 발표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도 2월 의장인 베네수엘라의 라파엘 라미레즈 유엔주재 대사의 발표에 따라 이날 회의에서 고인을 애도하는 1분간의 묵념을 가졌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그가 유엔을 이끌었던 기간은 유엔 역사상 가장 혼란스럽고 도전을 받았던 시기의 하나였다”며 “유엔에 대한 그의 헌신은 너무나 분명하며, 그가 남긴 족적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고인은 카이로의 알 살람 병원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확인됐으나 사인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이집트 신문인 ‘알-마스리 알-윰’은 그가 지난주 골반 골절로 입원했으나, 프랑스로 가서 수술을 받으라는 가족의 권유를 뿌리쳤다고 보도했다.
자녀는 없으며, 유족으로는 부인 레이아 마리아 여사가 있다.
고인은 1922년 11월 14일 카이로에서 출생했다. 이집트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한 기독교 종파인 콥트교 집안으로 조부가 이집트 총리를 지낸 명문가였다.
고인은 카이로 대학을 마친 후 프랑스와 미국에서 유학했다. 능통한 영어와 불어 실력을 갖췄고 서방통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특히 프랑스와는 평생 깊은 유대관계를 가졌다.
직업 외교관의 길로 들어선 고인은 14년 동안 이집트 외무 담당 국무장관을 역임했다.
1977년 안와르 사다트 당시 대통령이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을 위해 예루살렘을방문했을 때 수행했으며, 이집트 대표단을 이끌고 이스라엘과의 실무협상을 벌여 이듬해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끌어내는데 중심적 역할을 했다.
그래서 1992년 1월 유엔 사무총장으로 취임할 때에는 중동 사태 해결의 적임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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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트로스 갈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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