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3일(현지시간) 숨졌다. 향년 74세. 사진은 지난 200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무하마드 알리가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2016.6.4 연합뉴스
|
링 밖에서는 거침없는 언행, 링 위에서는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던 알리
인종차별, 전쟁 반대 등 적극적인 사회활동 펼쳐
“자유와 정의, 평등을 위해 싸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무하마드 알리는 그가 남긴 명언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처럼 화려했지만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
링 위에서는 세계 챔피언을 석권하며 복싱계를 호령했고, 링 밖에서는 인종차별과 전쟁 반대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며 조명을 받았다.
1942년 1월 17일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태어난 알리의 본명은 캐시어스 마셀러스 클레이 주니어였다.
알리가 살던 곳은 인종차별이 심한 곳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더 많은 무시를 당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12세 때 우연처럼 복싱에 입문했다.
자전거 분실 신고를 하며 분을 이기지 못했던 알리에게 한 형사가 “복싱을 배워봐라”라고 농담을 던진 것이 계기였다.
알리는 당시 세계 헤비급 챔피언 로키 마르시아노의 라디오 중계방송을 들으며 본격적으로 복싱에 투신했다.
알리는 18세였던 1960년 아마추어 복서로서 로마올림픽 라이트헤비급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이후 그의 삶은 크게 바뀌었다.
그는 고향인 켄터키 주 루이빌로 의기양양하게 돌아왔지만, 여전히 극심한 인종차별을 받았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사려다 거절당했고, 백인 갱들로부터 위협까지 받았다.
환멸을 느낀 알리는 금메달을 오하이오 강물에 던져 버린 뒤 곧바로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알리는 훗날 “미국을 대표해 금메달을 따냈다고 생각했던 환상이 그때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현란한 스텝과 반사신경, 정확한 펀치로 무장한 알리는 프로 무대에서 승승장구했다.
그는 1964년 2월 25일 복싱 역사상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알리는 당시 챔피언 소니 리스턴을 상대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겠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링 위에 올라섰고, 7라운드 TKO승을 거두며 WBA 챔피언 벨트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곧바로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했다.
그는 한창 인기를 구사하던 당시, 본격적으로 삶의 철학을 인생에 투영하기 시작했다.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한 뒤 개명했다.
알리는 당시 개명 사실을 알리며 “나는 백인 동네로 이사할 생각이 없고, 백인과 결혼할 생각도 없다. 난 당신들이 원하는 챔피언이 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알리는 링 안에서는 화려한 복싱으로 팬들을 열광케 했고, 링 밖에서는 거침없는 독설과 사회활동으로 언론에 본인의 이름을 도배했다.
|
미국의 전설적인 헤비급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3일(현지시간) 향년 74세로 별세했다. 그의 대변인 밥 거닐은 이날 성명을 통해 “32년 동안 파킨슨 병을 앓은 끝에 알리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2012년 2월 22일 피닉스 소재 신경외과 병원 BNI(Barrow Neurological Institute)에서 포즈를 취한 알리의 모습. 연합뉴스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