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6.22 09:18
수정 : 2016.06.22 09:58
베를린서 상영회 겸 토론회
지난 15일 저녁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에 자리한 독일금속노조 회관에서는 한국 여성 노동자의 삶을 기록한 다큐영화 <위로공단>의 순회 상영회가 열렸다. 재독한인단체, 독일금속노조, 인권단체 인코타의 주최로 프랑크푸르트·뮌헨·함부르크에 이어 열린 이날 상영회에는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인 이총각(왼쪽 둘째) 전 동일방직 노조지부장이 참석해 인코타의 활동가 베른트 힌츠만(맨 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눴다.
임흥순 감독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온 아시아, 특히 한국 여성 노동자 65명을 3년에 걸쳐 인터뷰한 95분짜리 기록필름인 ‘위로공단’은 지난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미술전에서 한국인 첫 은사자상 수상을 시작으로, 제18회 상하이 국제영화제와 몬트리올 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받으며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임 감독이 봉제공장 ‘시다’(보조 노동자)로 40년 넘게 일해온 어머니와 백화점 매장에서 근무하는 여동생의 삶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사실성을 높이기도 했다.
영화는 유신 말기인 1978년 동일방직 똥물투척 사건부터 최근의 삼성반도체 공장, 이랜드까지 개발독재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해온 노동운동의 사진과 영상 기록을 배경으로 인터뷰를 하는 개개인 노동자의 사연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담담히 보여주었다. 또 카메라는 한국을 넘어 프놈펜 봉제공장의 먼지 자욱한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소녀들까지 천천히 비춘다. 그들이 버는 임금은 얼마인지, 어디에 쓰이는지 묻는다.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지고 있는 제3세계로 이전된 봉제공장의 노동 착취, 노동운동 탄압 현장도 놓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날 상영회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한-독 노동연대의 공감으로 이어졌다.
지난 1990년부터 ‘깨끗한 옷’ 캠페인을 벌이며 제3세계 노동인권을 지키는 활동을 하고 있는 인코타의 힌츠만은 “어린 소녀들이 할머니가 되어 다리를 지나가는 마지막 장면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격려와 연대의 편지로 고통받는 노동자들과 함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영화가 한국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상황까지 보여준 것이 매우 흥미롭다. 영화 속에 나오는 노동운동 불법탄압에 대항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곳 유럽에서의 지원 활동을 통해 불법 연행되었던 23명을 석방시키고, 기초생계를 위한 임금 인상도 이룰 수 있었다. 연대를 통해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이씨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불매도 중요하다. 노동자들이 핍박받으면서 만드는 제품을 사지 않는 것이다. 내가 예쁜 옷을 입기까지 정작 노동자들은 걸레처럼 녹초가 되는 실상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 기업들이 아직도 외국에서 저임금에 열악한 노동환경 일자리를 통해 인권 탄압을 하고 있다. 독일에서 이런 기업들을 규제할 캠페인을 벌여주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한국에서 노동운동을 통해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에 변화가 있었는가?”라는 사회자 질문에 이씨는 “한국에서는 72년 최초로 동일방직에서 여성 노조 집행부가 탄생했다. 똘똘 뭉쳐서 3~4년 동안 노동시간 단축, 생리휴가 등 노동환경 개선을 이뤄냈다. 이를 통해 우리가 하면 된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주었고, 다른 여성 작업장에도 노조가 생기기 시작했다. 먼저 시작한 선배로서 보람과 긍지를 갖는다”고 전했다.
한주연/베를린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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