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6.02 16:23
수정 : 2017.06.02 22:21
“러시아 안 좋게 말하는 이들과
해커들 스스로 싸울 수 있는 것”
정부 차원 개입은 여전히 부인
미 조사 진척에 ‘꼬리 자르기’ 의혹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 시치미를 떼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해커들이 “애국심의 발로로” 해킹에 나섰을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 차원의 개입은 계속 부인했으나, 미국의 ‘러시아 게이트’ 조사가 진척되자 꼬리 자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1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미국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질문에 “애국심을 지닌” 해커들이 지난해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 해킹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해커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의 느낌으로 작품 대상을 정하는 예술가와 같다며 “그들이 일어났을 때 나라들 간 관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행동에 나설 수도 있는 법이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해커들이 자국을 헐뜯는 힐러리 클린턴을 공격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는 투로 말했다. 그는 “해커들이 애국심을 지녔다면, 자신들 관점에서는 옳다고 생각해서, 러시아를 안 좋게 말하는 이들과도 싸울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 국무장관으로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점령이나 시리아 내전 개입을 비난해온 힐러리를 지칭한 설명이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 차원에서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며, 러시아 정보기관은 연루되지 않았다고 다시 주장했다.
앞서 미국 정보기관들은 푸틴 대통령의 사주를 받은 러시아군 정보총국(GRU) 등이 지난해 민주당 전국위 서버를 해킹해 방대한 자료를 위키리크스에 넘겼다고 판단했다. 유출된 이메일에는 버니 샌더스보다는 힐러리에 유리한 쪽으로 경선을 관리한다는 의심을 일으키는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힐러리는 상당한 이미지 타격을 입었다.
<뉴욕 타임스>는 푸틴 대통령이 미국 의회와 특별검사가 러시아 게이트를 파헤치는 상황에서 ‘민간 차원의 일’이라며 꼬리 자르기에 나선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내전 개입 초기에도 현지에서 목격된 러시아인들이 군인들이 아니라 휴양객들이라고 주장했고, 시리아에 보낸 러시아군도 처음에는 구호 인력이라며 발뺌을 했다. 이 신문은 또 러시아에서는 해킹 등 첩보 활동에서 민과 관의 구분이 쉽지 않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신문은 푸틴 대통령이 “현대 기술”로는 “누군가 일부러 러시아연방이 공격의 시발점인 것처럼 꾸미는 일도 가능하다”고 말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주장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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