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30 16:36
수정 : 2017.08.30 23:18
|
미국 휴스턴 시민이 29일 보트를 타고 대피하면서 고양이를 꼭 껴안고 있다. 휴스턴/AP 연합뉴스
|
전문가들, 하비 위력 요인 분석
멕시코만 온도 예년보다 0.5도 상승
바다 100년간 20cm 상승도 일조
방글라데시는 국토 1/3 침수
남아시아서 한달새 1천여명 숨져
시에라리온·스위스 산사태도 불러
|
미국 휴스턴 시민이 29일 보트를 타고 대피하면서 고양이를 꼭 껴안고 있다. 휴스턴/AP 연합뉴스
|
미국 역사상 최대 강우량 기록을 세워가는 허리케인 하비의 위력을 키운 요인으로 지구 온난화가 지목되고 있다. 남아시아에서도 폭우로 1000명 넘는 사망자가 나오고, 다른 곳에서는 대형 산사태가 잇따르면서 기후변화가 본격적으로 인류를 강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국립기상청은 29일까지 30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집계된 하비가 단일 허리케인으로 본토에 가장 많은 비를 뿌리는 기록을 세웠다고 밝혔다. 텍사스주 휴스턴 동부의 시더 바이유는 이날 오후까지 51.88인치(1318㎜)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휴스턴의 연평균 강수량(1264㎜)을 넘는 비가 나흘 만에 쏟아졌다. <뉴욕 타임스>는 하비가 1978년 허리케인 아멜리아가 본토에서 세운 기록(48인치)을 깬 데 이어 허리케인 히키가 1950년 하와이에서 세운 기록(52인치)도 곧 돌파할 것이라고 전했다.
기후 전문가들은 하비가 유독 큰 힘을 발휘한 데는 온난화가 있다고 말한다. 허리케인이 발생하는 멕시코만의 올해 해수면 온도는 예년보다 섭씨 0.5도 이상 높다. 해수면이 0.5도 더워질 때마다 대기가 머금는 습기는 3% 증가한다.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지난 100년간 지구 해수면이 20㎝ 상승한 것도 허리케인이 더욱 힘을 키울 조건을 마련해줬다.
|
인도 뭄바이 시민들이 29일 도로를 채운 물살을 헤치며 걷고 있다. 뭄바이/AFP 연합뉴스
|
세계의 이목이 물바다로 변한 미국 4대 도시 휴스턴에 집중된 가운데, 남아시아에서도 이달 들어 기승을 부린 몬순 폭우가 큰 재앙으로 변했다. 유엔은 방글라데시, 네팔, 인도의 폭우로 숨진 이가 1000명이 넘는다며 관심을 촉구했다. 저지대인 방글라데시는 40년 만의 폭우로 국토의 3분의 1이 침수되면서 수백명이 사망하고 8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인도 비하르주에서는 최근 몇 주간 400명 이상 희생됐다. 인도 최대 도시 뭄바이의 시가지는 휴스턴처럼 강줄기로 변했다. 모두 합쳐 2000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는 3개국에서는 농경지와 가옥 파괴도 심각해 폭우의 여파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십자사 방글라데시지부 대변인 코린 앰블러는 “물밖에 안 보인다”며 “많은 이들이 ‘우린 홍수에 익숙하지만 평생 이런 것은 처음 본다’고 했다”고 전했다.
|
1000명 넘게 숨진 것으로 알려진 시에라리온 산사태 현장.
|
폭우는 도시와 농경지를 삼킬 뿐 아니라 산도 무너뜨린다. 이달 14일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 외곽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1000명 이상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시에라리온의 올해 강수량은 예년의 3배에 이른다. 집중호우가 벌목으로 약해진 지반을 무너뜨린 것이다. 사하라사막의 기온 상승이 그 이남 지역의 폭풍우 발생 빈도를 높였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다.
지난 23일 스위스 그라우뷘덴주의 알프스 마을을 덮쳐 8명의 목숨을 앗아간 산사태의 주범도 온난화라는 분석이 나온다. 스위스 환경청은 지난 150여년간 스위스의 기온이 섭씨 2도 상승한 게 산사태가 빈발하는 원인일 수 있다고 밝혔다. 바위가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영구동토가 녹으면서 산사태 발생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정말 심각한 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경고다.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캠퍼스의 우주과학공학연구소는 텍사스주 남동부를 덮친 폭우는 1000년에 한 번 발생할 만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은 하비가 연안 도달 직전에 풍속이 급속히 빨라졌다며, 이번 세기 말에는 허리케인의 풍속 증가 속도가 10~20배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놨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
산사태로 돌과 흙더미에 묻힌 스위스 그라우뷘덴주 마을.
|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