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2.08 14:14
수정 : 2017.12.0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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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하고 있는 앨라스테어 그레이의 모습. 테드(TED)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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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힐피거 매니저 그레이, 테드 강연서 ‘모조품과 테러자금’의 관계 강연
테러 조직원들 짝퉁 신발·CD·티셔츠 팔아 9·11테러 자금 등 마련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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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하고 있는 앨라스테어 그레이의 모습. 테드(TED) 영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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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빠르게 움직인다. 계절은 겨울이 한창이지만 패션 브랜드들은 얼마 전 이미 2018년 봄과 여름 신상품 발표를 끝냈다. 패션 브랜드들이 신상품을 발표하면 누구보다 재빨리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모조품, 소위 ‘짝퉁’ 제조자와 판매상들이다. 모조품 제조자들은 신상품의 디테일을 점검하고 섬세한 터치로 거의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모조품을 만들어낸다. ‘남대문 A급’, ‘이태원 A급’이라는 표현은 대중에게도 익숙하다. 모조품 소비에 무딘 나라가 우리나라뿐인 건 물론 아니다. 유럽과 미국에서도 모조품 소비는 패션 산업의 창의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개인 차원에서는 자칫 ‘완벽하게 똑같다면, 굳이 안 그래도 돈을 많이 버는 대형 브랜드 제품을 비싸게 주고 살 필요가 뭐가 있는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위조품을 절대 사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이유가 있다. 다양한 분야의 강연 영상을 제공하는 미국의
비영리기구 테드(TED)는 지난 6일 의류 브랜드 토미 힐피거의
브랜드 가치 매니저
알라스테어 그레이의 ‘가짜 핸드백은 어떻게 테러와 조직적 범죄의 돈줄이 되는가’라는 강연 영상을 공유했다. 모조품 조사를 주요 업무로 삼고 있는 그레이는 이 영상에서 수조 달러에 달하는 모조상품의 지하경제가 어떻게 테러 단체의 돈줄이 되는지 설명한다.
그레이는 샤를리 엡도 사건의 주범인
사이드 쿠아시와 세리프 쿠아시 형제를 예로 들었다.
그레이의 설명을 보면 당시 수년째 이 형제를 테러범 리스트에 올리고 감시하던 프랑스 정보국은 2014년 여름 세리프가 중국에서 모조 신발을 수입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 형제가 극단주의적 범죄에서 ‘사소한 범죄’로 눈을 돌렸다고 판단해 감시를 중단했다고 한다. ‘위험이 사라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난 2015년 1월, 두 형제는 프랑스 파리의 잡지사 샤를리 엡도의 사무실에 총기를 난사해 12명을 사망케 했다. 그레이는 영상에서 “모조품을 판 돈으로 12명을 죽이고 11명을 부상케 한 총을 사들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레이의 주장은
CNN의 당시 보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CNN은 당시 프랑스 정보국이 세리프 쿠아시가 모조품을 사들였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감시를 중단했으나, 이후 이 모조품을 판 자금으로 무기를 사들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그레이는 “(모조품 범죄가) 중국에서 벌어지는, 우리와 상관없는 문제가 아닌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레이는 또한 “파리가 특별한 것도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2004년 191명의 목숨을 앗아간 마드리드 통근 열차 폭파 사건의 자금 일부는 미국에서 가짜 CD를 판매한 돈이라며, “해당 사건이 있기 2년 전 알카에다의 훈련 지침서는 테러 조직을 지원하는 방법으로 모조품 판매를 권장했다”고 밝혔다. 알카에다가 훈련 지침서에 모조품 판매를 권장한 일은 2005년 6월 미국 의회 회의록에도 등장한다. 당시 미국 텍사스주의 존 코닌 상원의원은 재화와 서비스에 관한 규제 강화 법안을 발의하며 “알카에다의 훈련 지침서는 모조품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는 걸 권장한다”며 “이런 모조품들이 내 고향인 텍사스에도 만연하다”고 밝힌 바 있다.
테러 조직과 모조품 산업의 관계는 꽤 오래됐다. 미연방수사국(FBI)은 1993년 알카에다가 세계무역센터에 차량 폭탄테러를 감행한 사건을 조사한 뒤 범인들이 브로드웨이에서 모조 의류를 판 돈으로 자금을 조성했다고 밝힌 바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를 보면 3년 후인 1996년 5월 FBI는 애틀랜틱 올림픽이나 나이키의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 10만장을 압수했는데, 이 티셔츠의 판매상 역시 세계무역센터 폭파 주범 중 하나인 오마르 압델 라만의 추종자로 밝혀졌다.
프랑스의 생산자연합(Unifab)이 2016년에 발간한 ‘모조품과 테러리즘’(Counterfeiting & Terrorism)이라는 보고서는 테러리스트들이 모조품 산업에 뛰어드는 이유가 규제가 약한 반면, 수익성이 매우 좋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국제협력개발기구(
OECD)는 모조품에 관한 2016년 보고서에서 국가 간에 거래되는 모조품과 해적판이 거의 5000억 달러(약546조원) 어치에 달해 세계 무역거래량의 2.5%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앨라스테어 그레이의 강연 영상을 아래에서 볼 수 있다.
박세회
sehoi.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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