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30 16:49
수정 : 2018.04.30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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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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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 등 민주적 가치 안 지킨다”며
보조금 지원 중단 계획 마련
동유럽 쪽 “누구 마음대로?” 반발
EU 한 지붕 동-서유럽 분열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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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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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폴란드와 헝가리 등 ‘민주주의 가치’를 위협하는 회원국 정부에 보조금 지원을 중단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 내부에서는 최근 ‘서유럽 대 동유럽’의 갈등 구도가 심화돼 왔는데, 유럽연합 지도부가 결국 ‘문제 국가’로 꼽아온 동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돈줄을 조이며 행동에 나선 것이다.
유럽연합 집행위는 오는 2일 민주적 가치를 실현하지 않는 회원국들에 보조금이 가는 것을 막는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30일 보도했다. 이는 유럽연합의 2021~2027년 예산 계획의 일부다. 독일과 프랑스가 제안한 이 방안은 폴란드와 헝가리 같은 국가에 적용될 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했다.
폴란드와 헝가리는 유럽연합 내에서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기금’을 가장 많이 받는 나라들이다. 각각 연간 55억유로(약 7조1000억원)와 27억유로(약 3조5000억원)를 받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는 이들 국가에 리스본조약 제7조를 적용해 자금 지원을 중단하는 카드를 꺼냈다. 이 조항은 회원국들이 자유, 민주주의, 인권, 법치 등 유럽연합의 근본적 가치를 위반할 경우 제재를 가하고 투표권을 제한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폴란드는 2016년 민족주의 성향의 ‘법과 정의당’이 집권한 뒤 유럽연합과 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정부가 사법 개혁이라는 명목으로 사법부 인사권을 장악했다. 유럽연합 집행위는 지난해 12월부터 폴란드의 사법 독립성에 대한 조사를 벌여 왔다.
헝가리는 폴란드와 함께 유럽연합이 2015년에 도입한 난민 할당제에 반대해왔다. 더구나 지난달 총선에서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유럽연합과 난민 할당제에 반대 깃발을 내걸고 4선에 성공했다.
기 베르호프스타트 유럽의회 의원(벨기에)은 “유럽연합 납세자들의 돈이 사법부를 정치화하고 민주적인 안전장치를 없애고, 시민단체와 언론 자유를 훼손하는 지배층을 위해 쓰이는 것은 괴이한 일”이라고 말했다. 귄터 외팅거 유럽연합 예산국장도 “유럽연합 자금은 법원이 독립돼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곳에만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유럽 국가들이 불이익을 보는 대신 민주주의 가치를 잘 지키는 다른 회원국들은 더 많은 보조금 혜택을 볼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번 조처는 유럽연합의 통합적 질서와 가치에서 멀어지려는 회원국들을 압박하려는 프랑스와 독일 등 주요 회원국들이 주도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7일 유럽의회 연설에서 “유럽에 이기적인 민족주의가 발 붙이고 있다. 동·서 유럽 간 분열을 크게 우려한다”며 동유럽의 권위주의적 정권을 비판했다.
이번 조처로 유럽연합 내부 갈등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익명의 한 동유럽 외교 소식통은 “누가 무슨 근거로 회원국의 사법 체계를 평가하나? (유럽연합) 예산은 마음대로가 아니라 법에 의해서 통제돼야 한다”고 반발했다고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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