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24 23:22
수정 : 2018.05.2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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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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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김정은 위원장 앞으로 공개 편지
“최근 보여준 분노·적대감 볼 때 부적절…언젠가 만나길 고대”
북미정상회담 19일 앞두고 무산…한반도 정세 안갯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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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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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북한 외무성 관리들이 미국을 강경하게 비난한 것을 이유로, 6월12일로 예정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하겠다고 24일 밝혔다. 지난 23일 한-미 정상회담 이후 정상궤도를 회복하는 듯 했던 북-미 정상회담이 19일 앞두고 좌초함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다시 안갯속에 빠져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을 백악관을 통해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편지에서 “당신을 몹시 만나고 싶었지만 슬프게도 당신이 최근의 담화문에서 드러낸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을 볼 때, 나는 이번에는 오랫동안 계획해온 회담을 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이 편지는 우리 양쪽을 위해, 그러나 세계에는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이번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을 것임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 16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리비아 모델’을 거론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난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려”할 수 있다고 한 데 이어 24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거듭 같은 기조의 담화를 발표한 데 자극받은 것으로 보인다. 최 부상은 이날 담화에서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모독하고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오는 경우 나는 조-미(북-미) 수뇌회담을 재고려할 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겨냥해 “핵보유국인 우리 국가를 고작해서 얼마 되지 않는 설비들이나 차려놓고 만지작거리던 리비아와 비교하는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인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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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4일 공개 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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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편지에서 김 위원장에게 “당신이 핵 능력을 말했는데, 우리 핵 능력은 내가 그걸 사용할 일이 없기를 신에게 기도할 정도로 아주 거대하고 강력하다”고 했다. 북한이 “미국이 우리를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과 처신 여하에 달려 있다”(최선희 부상 담화)며 핵 능력을 과시한 것을 반박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특히 북한은 영속적인 평화와 위대한 번영과 부유의 기회를 잃었다. 이번에 놓친 기회는 역사에 정말로 슬픈 순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북-미 정상회담을 재추진할 여지는 남겼다. 그는 “언젠가 당신을 만나기를 몹시 고대한다”며 “이 가장 중요한 정상회담과 관련해 마음이 바뀌면 주저하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를 보내달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세명의 (미국인) 억류자를 풀어준 것은 아름다운 제스쳐였고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이날 밤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이 공개된 뒤 “트럼프 대통령의 뜻이 무엇인지,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고 시도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주 김계관 부상의 강경 담화와 남북 고위급회담 취소 등으로 경고등이 켜졌던 남북-미 관계는 지난 23일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최선을 다 한다”고 합의함에 따라 동력을 얻는 듯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진행할 뜻을 밝혔고, 북한이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의 핵실험장을 외국 언론인들 앞에서 폭파한 것도 긍정적 신호로 여겨졌다. 이번 주말 싱가포르에서 북-미 고위급 접촉이 이뤄질 것이라는 보도까지 나오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취소를 선언함에 따라 올 들어 쌓아온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급속한 냉각기를 맞으며 다시 위기 국면에 들어서게 됐다.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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