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6.26 11:42
수정 : 2018.06.26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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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017년 2월2일 백악관에서 할리 데이비슨 경영진과 노조 대표를 초대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시엔엔 머니>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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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 데이비슨, “EU 보복관세 피하려 생산시설 일부 이전”
트럼프 “나는 그들 위해 열심히 싸웠는데”
‘메이드 인 아메리카’ 상징 할리에 배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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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017년 2월2일 백악관에서 할리 데이비슨 경영진과 노조 대표를 초대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시엔엔 머니>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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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메이드 인 아메리카’의 상징으로 치켜세웠던 오토바이 브랜드 할리 데이비슨이 유럽연합(EU)의 보복관세를 피하기 위해 일부 생산시설을 해외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폭탄’을 마구 투하해 격화된 ‘무역 전쟁’의 불똥이 트럼프 대통령의 발 아래로 튀고 있는 것이다.
할리 데이비슨은 25일 공시자료를 통해 유럽연합의 보복관세를 회피하기 위해, 유럽연합에 판매하는 오토바이 생산시설을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고 <월스트리트 저널> 등이 보도했다. 생산시설 해외 이전은 앞으로 18개월에 걸쳐 진행된다.
이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무역 전쟁의 여파다.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연합의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관세를 부과하자, 유럽연합은 지난 22일부터 오토바이, 버번위스키, 청바지 등 28억유로(약 3조6천억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위스콘신주 밀워키에 있는 할리 데이비슨에게 유럽은 미국 국내시장 다음으로 큰 시장이다. 지난해 할리 데이비슨은 미국에서 14만8000대, 유럽에 3만9800대, 아시아태평양에 3만300대 등을 판매했다. 할리 데이비슨은 기존에는 유럽연합에 수출할 때 6%의 관세를 부담했지만, 이번 보복 조처에 따라 관세가 31%로 뛰었다. 이에 따라 오토바이 한 대를 유럽에 수출할 때마다 2200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연간으로 치면 올해는 남은 기간에 3000만~4500만달러, 2019년에는 9000만~1억달러의 추가 비용이 들 것으로 전망했다.
할리 데이비슨의 마이클 플루고프트 대변인은 “유럽연합의 관세 부담을 덜기 위해 해외 생산시설을 늘리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그러나 이것만이 우리가 유럽연합 고객들에게 오토바이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하게 지속 가능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할리 데이비슨은 이미 브라질, 인도, 오스트레일리아에도 해외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으나,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해외 시설을 늘리기로 한 것이다. 이날 할리 데이비슨 주가는 6% 하락해 41.57달러를 기록했다.
할리 데이비슨의 발표에 실망감을 나타낸 건 주식시장만이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할리 데이비슨이 가장 먼저 백기 투항을 했다’며 격한 배신감을 터뜨렸다. 그는 25일 트위터에 “여러 기업들 중에서도 할리 데이비슨이 가장 먼저 백기를 흔들어 놀랐다”고 적었다. 이어 “나는 그들을 위해 열심히 싸웠고 그들은 결국에는 우리와의 무역에서 1510억달러의 피해를 끼치고 있는 유럽연합으로 수출하는 데 관세를 내지 않게 될 것”이라며 “세금은 그저 할리의 변명일 뿐이다. 인내심을 가져라”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해시태크도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분노를 표출한 것은, 그가 할리 데이비슨에 보여줬던 남다른 애정과 자부심 때문이다. 대선 때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무역적자 해소를 핵심 공약으로 내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2월 매슈 레바티치 할리 데이비슨 최고경영자와 이 회사 노조 대표를 백악관에 초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할리 데이비슨은 1901년 설립 이후 미국 성공의 역사를 썼다.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의 훌륭한 예”라고 추어올렸다. 그는 “자랑스럽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 할리 데이비슨”이라고 했다.
미국의 ‘토종 기업’이 짐을 싸는 사이, 행정부 안에서는 무역 정책을 놓고 고위 관계자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등 혼선을 보였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25일, 중국은 물론 미국의 첨단 기술을 훔치려는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투자 제한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그러나 같은 날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시엔비시>(CNBC) 뉴스 인터뷰에서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 나라를 간섭하는 나라들에 대해 투자 제한 조처를 취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이런 혼선에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므누신 재무장관이 말한 대로 우리 기술을 훔치는 모든 국가를 타깃으로 한 성명이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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