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8.22 15:56
수정 : 2018.08.22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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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정부의 화폐개혁이 단행된 다음날인 21일 한 남성이 문이 닫힌 상점 앞에 서 있다. 상점 앞 철제 문에는 “배고픈 사람들이 다 죽고 있다”는 글귀가 써 있다. 카라카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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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96% 절하한 화폐개혁에 야권 총파업 호소
상점·기업 문 닫고 기존 화폐 쓰레기통에 버려지기도
규모 7.3 강진까지…사람들 대피 소동
사실상 국가 경제 ‘마비’ 상태…“혼란 더 커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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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정부의 화폐개혁이 단행된 다음날인 21일 한 남성이 문이 닫힌 상점 앞에 서 있다. 상점 앞 철제 문에는 “배고픈 사람들이 다 죽고 있다”는 글귀가 써 있다. 카라카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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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대대적인 화폐개혁을 단행한 베네수엘라서에 혼란이 커지고 있다. 시장 불안으로 인해 많은 기업과 상점이 문을 닫았고 야권이 총파업을 선언하는 등 사실상 국가 경제가 마비됐다.
<비비시>(BBC) 등 외신들은 21일 베네수엘라 야권이 정부의 화폐개혁에 반발해 하루 동안 총파업을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화폐개혁 이틀째를 맞는 이날 실제 다수의 노동자가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고, 수도 카라카스 중심가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야권 지도자인 안드레스 벨라스케스는 “국민의 60%가 총파업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여권은 야권의 총파업 선언에 맞서 정부의 긴급 조치를 지지하기 위한 맞불 집회를 소집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지난달에만 물가상승률이 8만%에 달하자, 기존 통화 가치를 95∼96% 평가절하한 새 통화를 발행하는 내용의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새 통화인 ‘볼리바르소베라노’는 기존 볼리바르를 10만대 1로 액면 절하한 것이다. 이 돈은 베네수엘라의 석유 자원을 토대로 한 디지털 가상화폐 페트로(Petro)와 연동된다. 또 정부는 물가 인상에 맞춰 월 최저임금을 300만볼리바르에서 1800만볼리바르소베라노로 액면가 기준 60배 인상했다.
과격한 내용의 화폐개혁이 발표되자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혼란 휩싸였다. 은행 현금인출기 앞은 돈을 찾기 위한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고, 상점들에는 물건값이 오르기 전에 생필품들을 구하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실제로 이날 많은 상점이 문을 닫았고, 문을 열더라도 물건값을 더 올려 판매했다. 화폐가치 폭락에 분노해 100볼리바르 지폐를 쓰레기통에 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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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북동부 수크레 주 이라파 시에서 남서쪽으로 22㎞ 떨어진 지점에서 21일 규모 7.3 강진이 발생했다. 지진의 여파로 수도 카라카스 건물이 심하게 흔들렸고 놀란 사람들이 건물 밖으로 대피해 있다. 카라카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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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더해 베네수엘라엔 규모 7.3의 강진까지 발생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의 진앙은 수크레주 이라파시에서 남서쪽으로 22㎞ 떨어진 지점이며 진원의 깊이는 123.2㎞라고 밝혔다. 진원이 깊어 큰 피해는 없었지만, 지진은 진앙에서 400㎞ 떨어진 수도 카라카스에서도 감지됐다. 건물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놀란 시민들이 건물 밖으로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상점에 비치된 물건이 바닥에 쏟아지고, 아스팔트 거리가 갈라지는 피해도 확인됐다. 베네수엘라 내무부는 아직까지 사상자 등의 인명 피해는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극심한 경제난과 화폐개혁으로 인한 시장 혼란으로 사실상 베네수엘라 경제는 마비된 상태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때 석유 부국이던 베네수엘라 경제는 2014년 이후 국제유가 하락과 정부의 무분별한 경제운용으로 사실상 와해된 상태다. 베네수엘라의 경제 규모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집권한 2013년 4월 이후 절반 이상으로 조그라들었다. 극심한 경제 악화로 2014년 이후 인근 남미국가로 탈출한 베네수엘라인은 230만명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번 극약 처방이 경제를 안정시키기보다 혼란만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 같은 경제위기에 대해 석유 이권을 노린 미국의 지원 아래 우파 기득권층이 벌인 ‘경제전쟁’ 탓이라고 주장했다. 베네수엘라 야권은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시기에 만들어진 포퓰리즘 정책을 폐기하지 않고 계속 밀고 나가면서 국가 재정이 바닥났고, 국제유가 폭락 사태까지 겹치면서 국가 경제가 무너졌다고 맞서고 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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