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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27 16:10 수정 : 2018.09.27 17:22

2015년 7월 〈뉴욕매거진〉 표지에 코스비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 폭로자 35명이 함께 등장했다. 36번째 의자는 이후의 증언을 위해 비워두었다.

최대 10년 징역 ‘국민 아빠’에서 ‘성폭력 약탈자’된 빌 코스비
코스비 명성에 침묵하던 피해자들 폭로 뒤 법정 진술하기까지
‘유죄’ 인정 뒤에도 피해자에 대한 시선 여전

2015년 7월 〈뉴욕매거진〉 표지에 코스비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 폭로자 35명이 함께 등장했다. 36번째 의자는 이후의 증언을 위해 비워두었다.

“아무리 멀리 떠나도 그로부터 (얻은 성폭행 피해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미국의 유명 배우 빌 코스비의 성폭력 피해자 스테이시 핑커튼이 지난 4월 법정에서 한 진술이다. 핑커튼은 코스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60여명 가운데 한 명으로,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코스비의 또 다른 피해자 안드레아 콘스탠드의 소송을 돕기 위해 당시 법정에 섰다. 지난 25일(현지시각), 콘스탠드 사건으로 코스비에 대한 최대 징역 10년의 처벌이 확정되자 핑커튼은 “오늘에야 자유로워졌다”는 소감을 말했다.

코스비를 “성폭력 약탈자”(sexually violent predator)라 부른 이번 판결은 2004년, 코스비가 자신의 집에서 당시 대학 농구 코치였던 콘스탠드에게 약물을 먹인 뒤 성폭행을 했다는 혐의에 대한 유죄 판결이다. 당시 소송에서는 최종 불기소 처분을 받았으나 십여년이 지난 2015년, 코스비에 대한 ‘미투’ 폭로들이 이어지면서 공소시효 만료 직전 재수사로 이어졌다. (▶관련 기사: ‘국민 아빠’에서 ‘성폭력 약탈자’로…빌 코스비 최대 10년형 선고)

■ ‘미투 MeToo’ 시작점에 빌 코스비가 있었다

권력을 가진 유명 남성들로부터 당한 성폭력 피해를 오랫동안 침묵해온 피해자들이 잇단 공개 폭로에 나선 미국 ‘미투’ 운동의 시작점에는 빌 코스비가 있었다. 드라마로 얻은 자상하고 든든한 ‘국민 아빠’, 그리고 각종 연설 등 사회적 활동으로 얻은 성공한 흑인 이미지 한편으로 코스비는 이미 10년 넘게 십수명의 여성들로부터 성폭행 피해 고발을 당한 상태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그런 의혹들은 코스비의 위상에 가려 사회적으로 쟁점화되지 않고 있었다.

빌 코스비의 머그샷. 몽고메리카운티 교정본부 제공
그러던 2014년 10월, 인기 코미디언 한니발 뷰레스가 스탠드업쇼에서 코스비를 향해 직접 ‘강간범’이라고 부른 것이 이슈가 되면서 코스비의 과거 피소 이력들이 다시 화제에 올랐다. 여기에 추가 폭로가 이어졌고, 코스비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의 수는 60여명에 이르게 됐다.

<뉴욕매거진>은 2015년 7월, 이들 가운데 35명의 인터뷰를 실명으로 실었다. 연예계뿐 아니라 다양한 직업군의 여성들이 각자의 피해 상황에 대해 답한 인터뷰 기사의 제목은 “나는 더이상 두렵지 않다”였다. 각 여성들의 사진 아래로는 1960년대부터 1996년까지, 이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연도가 적혔다.

이듬해 대선을 앞두고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한 피해자들의 폭로가 나왔다. 2017년 말에는 “할리우드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폭로가 쏟아지면서 ‘미투’와 함께 피해자들을 지지하는 ‘위드유’ 운동이 촉발됐고, 지금에 이르렀다. (▶관련 기사: 2017년 10월 23일, 와인스틴이 물꼬 튼 ‘성폭력 폭로’…“왜 트럼프는 예외인가?”)

2011년 오스카 시상식에 참석한 하비 와인스타인. 생중계 갈무리.

■ 4년 전 빌 코스비를 고발한 피해자들이 법정에 선 이유

60여명의 폭로에 등장한 코스비의 혐의 가운데 다수는 미국 내 대부분의 주에서 공소시효가 지나 수사할 수 없었다. 하지만 2004년에 벌어진 콘스탠드 사건은 2015년 당시 아직 시효 만료 전이었고, 여론의 힘을 얻어 재수사가 이뤄졌다.

2015년 <뉴욕매거진>과 인터뷰한 35명은 각자의 피해 상황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콘스탠드의 소송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인터뷰에서 “유명한 남성을 성폭력 혐의로 고발하는 여성은 돈을 원하거나 주목을 끌기 위해 가짜로 벌인 짓이라는 의심을 가장 먼저 받는다”고 털어놨다. 이들 가운데 몇명은 자신이 항의했을 때 코스비가 “아무도 네 말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게다가 가족과 친구들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놨을 때도 그들이 그 고백을 믿지 않거나, 믿더라도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 일은 말렸다고 했다. 2005년에 문제를 제기한 콘스탠드는 이후 ‘꽃뱀’, ‘사기꾼’, ‘거짓말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모든 시기에 걸쳐 일어났던 일이다.

당시 코스비는 콘스탠드에게 약물을 먹여 성폭행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2017년 재수사에 들어간 세 건의 성폭행에 대한 첫 재판이 열렸다. 2018년 4월 열린 재판에서 피해 폭로자 12명은 각자가 겪은 코스비의 약물 사용과 성폭행 피해 트라우마를 털어놨다. 코스비가 이때 받은 유죄 판결이 지난 25일 확정됐다.

■ 유죄 판결 이후에도 피해자에 대한 편견은 여전

미국의 유명인 ‘미투’ 고발 중에서는 가장 처음으로 유죄가 인정된 사례지만, 코스비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여전히 피해자들의 진술이 거짓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드라마 <코스비 가족>(The Cosby Show) 이후 코스비가 흑인의 긍정적 이미지를 보여주고 흑인 사회와 학생들을 만나 동기부여 연설을 하면서 사회적 활동을 해온 점에 근거해 사건 자체를 ‘흑인 사회에 대한 공격’으로 프레이밍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가수 알 켈리의 성폭력 혐의에 대해서도 비슷한 옹호 논리가 제기된 바 있다.

“이 나라가 흑인을 수세기 동안 어떻게 대접해왔는지 알고 있다”는 코스비 대변인의 논란 발언을 소개한 <뉴욕타임스>의 기사

코스비의 대변인 앤드류 와이엇은 판결 이후 “코스비가 흑인이라는 사실이 판결에 영향을 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변인은 최종 판결에 앞서 피해자 쪽 전문가 증인으로 나선 심리학자 크리스틴 더들리가 코스비를 “집단 내 권력을 이용해 친분을 쌓은 뒤 성폭력을 가하는 ‘성폭력 약탈자’에 해당한다”고 말한 데 대해 “백인 여성이 흑인 남성을 성폭력 약탈자라 부르며 돈벌이를 한다”고 평하기도 했다.

판결 직후에는 “미국 역사상 가장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재판이었다”며 “예수를 처형한 뒤 결국 어떻게 됐는지 떠올려보라, 코스비가 예수라는 게 아니라, 이 나라가 흑인을 수세기 동안 어떻게 대접해왔는지 알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편 수감생활을 시작한 코스비에게 선고된 징역은 최대 10년으로, 3년 복역 뒤 가석방 신청 자격이 주어진다.

박수진 기자 sujean.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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