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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06 18:01 수정 : 2018.11.06 20:45

영국의 찰스 왕세자

가나 방문, 노예무역 거점 들러
직접 ‘사과’보다 ‘자성’에 가까워
“사과·배상 위한 중요한 단계”

영국의 찰스 왕세자
“영국이 노예무역에 가담한 것은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오점이다”

영국의 찰스 왕세자(70)가 아프리카 가나를 방문해 200여년 전 영국이 가담한 대서양 노예무역 행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고 5일 <가디언>이 보도했다. 영국 왕실이 직접 피해국에서 과오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찰스 왕세자는 연설을 통해 “많은 아프리카인이 영국과 다른 나라의 배에 실려 대서양을 건너 노예 생활을 했다”며 “노예무역이라는 잔혹 행위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41년 전 가나 오수에 있는 크리스천스보그성을 방문한 상황을 언급하며 “가나와 유럽 국가들과의 고통스러운 관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는 결코 잊혀서는 안 될 심각한 불의”라고 자성했다. 그가 언급한 오수는 150만명의 아프리카인들이 유럽과 미국 등에 팔려나간 덴마크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다. 크리스천스보그성은 1957년 가나가 영국에서 독립한 후 정부청사가 됐다.

유럽 국가들은 16세기부터 담배·설탕·목화 등 수익성 높은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노예를 활용하다가 이후 아메리카 등에 직접 노예를 수출하는 노예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16~19세기에 전체 노예무역 규모는 1500만~30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노예제는 1807년 영국을 시작으로 프랑스, 미국 등에서 폐지됐다.

찰스 왕세자는 “영국이 부끄러운 노예제를 폐지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우리는 이런 비참한 공포가 절대 잊히지 않도록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예 경매에 나온 여성과 아이
영국 왕실이 직접 노예제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은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간 국제사회에서 인디언 학살과 노예무역에 가담한 영국의 과오를 사과하라는 요구가 지속해서 있었다. 하지만 2007년 당시 토니 블레어 총리가 노예무역으로 인한 고통에 대해 “깊은 슬픔과 유감”을 표명했을 뿐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영국 정부가 배상 소송의 우려 때문에 직접적 사과를 피한 것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찰스 왕세자의 발언도 직접적인 사과 표명이라기보다 과오에 대한 자성에 가까웠다. 하지만 <가디언>은 찰스 왕세자의 발언은 영국이 잘못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위한 ‘중요한 단계’라고 풀이했다.

아직 유럽 국가들의 노예무역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와 배상은 이뤄지진 않았다. 하지만 가해국들 사이에서 지속적인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06년 자크 시라크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노예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념일을 계속 지켜나가겠다고 약속했고, 미국 상원과 하원은 2008년과 2009년에 각각 노예제와 인종차별에 대해 사과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유네스코는 1998년 대서양 노예무역의 부끄러운 역사를 기억하고 노예제 폐지의 역사적 중요성을 상기하기 위해 매년 8월23일을 ‘국제 노예무역과 철폐를 기리는 날’로 지정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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