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성탄 미사 집전 “사랑 있는 곳에 빛이…”
베들레헴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기원 예배
바티칸 대사 ‘이스라엘 콘크리트 장벽 건설’ 비판
성탄절 전야에도 스리랑카·브라질 등 ‘테러’ 잇따라 “사랑이 있는 곳에는 광명이 깃들지만, 증오가 있는 곳에는 암흑이 찾아든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5일 교황 즉위 이후 처음으로 집전한 성탄절 미사에서 ‘성스러운 땅’ 중동의 평화를 갈구했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는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에 이스라엘이 건설하고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에 막혀 빛이 바랬다고 주요 외신들이 전했다. 황금빛 옷에 흰색 조끼를 받쳐입은 교황은 이날 미사에서 “성탄절의 참뜻은 아기 예수의 빛에 있다”며 “우리는 이 빛이 이 시대의 차가운 바람에 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성탄절의 영광은 모든 어린이, 특히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에게도 미친다”고 강조해, 낙태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미사에 앞서 교황은 예수 탄생을 상징하는 말구유를 성 베드로 광장에 설치하는 의식을 마치고, 자신의 아파트 창가에 평화를 기원하는 촛불을 밝혔다. 교황은 또 이날 낮 비가 내리는 가운데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수만명의 순례자들에게 현대인들이 기술적인 업적에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면 영적인 불모지와 공허한 정신세계를 초래할 수 있다며 영적 각성을 촉구하는 성탄절 메시지를 발표했다.
교황은 한반도와 그밖의 아시아 지역에서 대화가 지속되고 위험한 분쟁이 해결됨으로써 우호라는 항구적이고 평화로운 결말에 이를 수 있기를 기도했다. 교황은 공정하고 현명한 조치를 통해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에서 희망의 신호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아프리카 일부 지역의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보호도 촉구했다.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에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기원하는 미사와 예배가 열렸다. 특히 이스라엘군이 철수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들은 2000년 봉기 이후 처음으로 평화로운 성탄절을 맞았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그러나 이날 성탄절 미사를 집전한 미셸 사바 이스라엘 주재 바티칸 대사는 이스라엘이 세우고 있는 콘크리트 장벽으로 인해 베들레헴이 거대한 감옥으로 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8m 높이의 이 장벽은 순례자들에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상기시켰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우리는 벽이 아니라 다리를 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라크 바그다드에선 야간 통행금지 때문에 자정보다 몇시간 빨리 성탄 미사가 이뤄졌다. 바그다드의 카라다 기독교 구역에 있는 성모교회에서 열린 미사에서 에마뉴엘 델리 주교는 이라크의 평화를 기원했다. 앞서 쿠르드족 출신의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은 기독교도들에게 축하 인사를 보냈다 성탄절을 앞두고 세계 곳곳에선 테러가 잇따랐다. 스리랑카에선 24일 타밀족 의원이 성탄절 미사에 참석해 예배를 보는 도중 무장괴한들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타이 남부에선 무슬림 마을의 촌장과 불교 주민들이 이슬람 무장단체로 추정되는 괴한들에게 피살됐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선 24일 사제폭탄이 터져 1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유강문 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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