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이남 700억달러 부채 돌파구 가난 때문에 죽어가는 어린이들의 생명을 상징하는 ‘죽음의 시계’가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열린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참가국들이 최빈국들의 부채를 모두 탕감해 주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영국 <비비시방송>은 5일(현지시각) “심각한 부채 문제를 안고 있는 빈곤국가들의 빚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1990년대 이래, 이번 결정은 새롭고 중요한 단계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법을 놓고 미국과 영국의 의견이 달라, 실현 방안을 찾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빈국들이 집중돼 있는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는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등에 약 700억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 하루 어린이 3만명 가난 때문에 숨져 = 런던 시내의 호화로운 연회장 랭카스터 하우스에서 회의가 시작되는 순간 부유국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시민단체 ‘세계발전운동’이 내건 ‘죽음의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회의 시작시각인 4일 저녁부터 폐막시각인 5일 오후 3시30분까지 돌아간 ‘죽음의 시계’는 전세계에서 회의 기간에 가난 때문에 숨져가는 어린이 2만6300명을 뜻하는 숫자를 차례로 표시해 나갔다. 이들 단체는 전세계에서 하루 평균 약 3만명의 어린이가 가난 때문에 목숨을 잃고 있다며 부국들이 행동에 나서기만 하면 이들을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앞서 대중집회 연사로 초청돼 런던에 간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우리는 정의를 요구하러 이 자리에 왔다”면서 “빈곤국이 계속 고통을 겪는 동안 지체하지 말라. 당장 오늘 밤 행동에 나서라”고 부국들에게 촉구했다. ◇ 구체적 합의이행 방법엔 이견= 재무장관 회의 뒤, 회의 의장국인 영국의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은 “7개 부국의 재무장관들이 처음으로 빈국의 부채를 100% 탕감하는 데 합의했다”며 “최빈국들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등 다자 금융기관의 개별 검토를 거쳐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하지만 브라운 장관이 구체적 재원조달 방법으로 제안한 △국제통화기금 보유 금의 판매나 현재 시세대로 가치 재평가 △아프리카 최빈국들을 위해 주요 7개국 보증으로 해마다 100억달러씩 10년 동안 원조를 늘리기 위한 ‘국제금융제도’(IFF) 도입 등은 미국의 반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존 테일러 미국 재무차관은 “미국은 이미 빈국 원조를 늘리고 있다”며 “이런 방법은 (미국) 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은 4월 워싱턴에서 열릴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장관급 회의에서 이번 결정을 실천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 제시하게 된다. 이번 회의에서는 지진해일 피해국의 부채 및 이자 상환을 올 연말까지 유예하기로 합의했으며 유가 안정화 방안, 중국의 환율 유연화 방안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윤진 기자, 연합 mindle@hani.co.kr
부국 재무장관 회의 겨냥 “빈곤퇴치” 대규모 집회 만델라 “가난 없애기는 자선 아닌 정의 실현” “노예제도나 인종분리정책처럼, 가난은 자연적인 게 아니다. 가난을 없애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보호와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넬슨 만델라(86)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4일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2005년을 국제적 불평등을 끝내는 해로 만들자며 2만2천여 청중들에게 호소했다. 지난해 7월 공식적 대외활동을 접기로 했던 만델라를 이날 다시 대중 앞으로 이끈 곳은 ‘가난을 역사의 뒤안길로(메이크 포버티 히스토리)’라는 모임이다. 이들은 2005년을 전세계에서 빈곤을 퇴치하기 위한 절호의 시기로 보고 조직적이고 효율적인 활동을 벌이기 위해 자선기구, 노동조합, 시민·종교단체 등 200여 기구가 모여 지난 1월 발족한 단체다. 상징적 의미로 팔에 흰 완장을 차고 다니는 이들의 활동 목표는 △부자 나라와 기업들에게만 유리한 국제 무역 질서 바로잡기 △빈국들이 감당할 수 없는 채무 탕감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고 나은 원조 제공 등이다. 2005년을 절호의 시기로 보는 이유는 우선 올해 빈국의 부채 탕감을 줄곧 주장해 온 영국이 주요 8개국 회의와 유럽연합 의장국을 맡아, 아프리카 채무 문제를 주요 이슈로 다룰 계획이기 때문이다. 또 9월 열릴 유엔 총회 특별 정상회담에서 2015년까지 가난으로 고통받는 인구 비율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새천년개발목표’를 점검한다. 이들은 지난 3일 주요 7개국 재무장관 회의가 열린 런던에서 대규모 대중집회를 연 데 이어, 7월에는 주요 8개국 회의에 맞춰 회의장소인 스코틀랜드 글렌이글즈, 에딘버러 등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하는 등 올해 말까지 각종 집회와 캠페인을 벌일 계획이다. 윤진 기자 mindle@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