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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회복 뒷받침해온 ‘양적 완화’ 해제 결정
긴축으로 방향 전환…세계 금융시장 큰 영향
일본이 돈을 풀어서 경기회복을 뒷받침하는 통화정책에 마침표를 찍었다.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9일 정책위원회·금융정책결정회 이틀째 회의를 열어 2001년 3월부터 시행해온 ‘양적완화 정책’의 해제를 찬성 7표, 반대 1표로 결정했다. 이는 일본은행이 2000년 ‘제로금리 정책’을 잠시 해제한 것을 빼면 1990년 이후의 통화완화 일변도에서 긴축 쪽으로 정책기조를 전환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양적완화는 디플레이션(물가하락) 극복을 위해 도입한 이례적인 조처다. 금융기관들이 일본은행에 맡기는 당좌예금(지급준비 예치금) 잔고를 늘리는 방식으로 통화공급을 확대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은행은 2000년 8월 제로금리 정책에서 탈피한 뒤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자 당좌예금 잔고를 5조엔으로 늘린 데 이어, 차례로 규모를 확대해 30조~35조엔까지 늘렸다. 일본은행은 앞으로 그 규모를 6조엔으로 줄여 통화공급을 죌 것으로 보인다. 후쿠이 도시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잔고 삭감을 주의깊게 하겠다”며, 그 기간이 석달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결정은 7년 이상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아온 디플레이션이 사실상 해소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무엇보다 일본은행이 애초 돈풀기 정책을 시행하면서 내건 해제 조건이 충족됐다.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안정적으로 0% 이상을 나타내는 것 등이 그 조건이었다. 지난 3일 발표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약 8년 만에 최고치인 0.5%를 기록하는 등 4개월 연속 0%를 넘었다.
일본은행은 이미 지난해 11월 소비자물가지수가 플러스로 돌아섰을 때부터 돈풀기 정책 해제를 기정사실화해 왔다. 일본은행 안에선 과도하게 풀린 돈을 거둬들이는 시점을 놓치면 거품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비정상적 통화정책을 끝내 정책 자율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동안 돈풀기 정책을 끝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되살아나는 경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정부 쪽의 견제가 강해 그 시점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이 전개돼왔다.
일본은행은 돈풀기 정책을 해제함으로써 금융정책의 주된 수단을 통화량에서 금리로 옮길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경기회복에 악영향을 주지 않고 금융시장의 동요를 막기 위해 제로금리는 당분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또 제로금리가 언제까지 유지될 것인지 등 금융정책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중기적으로 바람직한 물가상승 수준인 ‘인플레 참조치’를 제시했다. 정책위원들은 논란 끝에 ‘전년 대비 0~2%’를 명기하기로 결정했다. 물가상승률 전망치가 이 범위를 뛰어넘으면 제로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이 참조치는 1년 단위로 조정할 예정이다.
미국과 유럽의 금리인상에 이은 이번 일본의 금융정책 변경으로 국제 금융시장에도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헤지펀드와 개인투자자 등은 그동안 일본 시중은행에서 싸게 돈을 빌려 일본 국내외 주식에 투자하거나 미국 국채 등을 구입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 조처로 이것이 다소 어려워지게 됐다. 이날 도쿄증시 닛케이평균주가는 400엔 이상 올라 1만6천엔대를 회복했으나, 엔화는 오히려 약세를 보였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양적 완화 정책이란?정책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 통상적인 금융정책을 포기하고 금융기관이 여유자금을 일본은행에 당좌예금으로 맡기는 ‘양’을 조절하는 변칙적인 정책이다. 일본은행은 당좌예금이 목표에 이르도록 금융기관으로부터 국채를 사들이는 등의 방법으로 시장에 자금을 풍부하게 공급한다. 자금에 여유가 생긴 금융기관이 기업 등에 대한 대출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경기를 부양하려는 목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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