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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일본 대사관 풍경. 그 앞의 전경차와 전경들은 일상화된 풍경입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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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미 FTA와 관련해 의미 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한국에 주재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 외교관들과 만나 직간접적으로 한-미 FTA에 대한 일본과 중국의 비교적 솔직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미 FTA를 바라보는 관점은 수없이 많겠지만, 저의 개인적인 견해는 차차 밝히도록 하고, 제가 기자직을 통해, 혹은 주변 지인들을 통해 체감하는 한-미 FTA에 대한 글들을 정리해 볼까 합니다.
오늘 올릴 그 첫번째 편은, 주한국 일본 그리고 중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외교관들의 시각입니다. 이런 비공식적 만남에서 나온 이야기는 이른바 백그라운드브리핑(back ground briefing)의 일종으로 보기 때문에, 제가 접촉한 이들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이들 역시 사견을 전제로 말한 바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를 그들 국가의 공식적인 견해로 해석할 수 없음도 분명히 먼저 밝혀 둡니다.
FTA를 바라지 않는 일본
제가 일본 외교관을 만나기 전날, 한-미 FTA를 두고 같이 의견을 나누던 여당 재정경제위원회 소속의 한 의원은 “일본은 한-미 FTA가 타결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하지요. 일본 제조업체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국 시장에, 한국 제조업체들이 현재보다 좀 더 유리한 조건으로 진출하는 것을 달가워 할 리가 없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저는 “일본으로서는 한-미간에 FTA가 먼저 체결되면, 그 이후에 이뤄질 지도 모르는 미-일 FTA 협상에서 한-미 FTA안이 일종의 프로토콜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달가워 하지 않을 것이다”는 의견을 냈죠.
일본 외교관(이후 편의상, ‘미스터 재팬’이라고 부르겠습니다.)에게 그 의원의 생각과 제 생각을 물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히 공감하더군요.
아울러 미스터 재팬에게 ‘미-일 FTA가 체결될 가능성은 어떻게 보는가’라고 물었습니다.
미스터 재팬은 “일본이 FTA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높지 않고, 당장으로서도 일본 정부로서는 계획이 없다”면서도 “한-미 FTA가 체결된 이후의 상황이 어떤 변동이 있을 지는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럼, 왜 일본은 FTA를 바라지 않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본은 제조업 분야에서는 미국 시장을 석권한 지 오래이기 때문에 더 개척해야 할 시장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금융, 서비스, 문화 분야와 농업 분야 등이 남았는데, 이는 미국에 비해 일본이 모두 약세인 시장입니다.
무릇, 모든 외교적 협상은 상호 호혜적입니다. 양쪽이 모두 이익이 되는 부분이 있어야 타결이 된다는 거죠. 미-일 FTA는 미국쪽에 좀더 기울어 지는 협상이 되기에 일본이 끝까지 버틴다는 겁니다.
그러면 한-일 FTA는 어쩌죠? 김대중 정부 시절의 약속으로 바탕으로, 지난 2003년부터 시작됐던 한-일 FTA 협상은 사실상 한국 정부의 ‘No’ 선언으로 결렬된 바 있습니다.
(잠시 부언하자면, 한국 정부가 미국이나 일본, 중국과 같은 주요 국가과의 협상을 중간에 깬 것은 사실상 이것이 처음이었습니다. 한국 외교가에서는 협상 중단 선언을 마치, 사실상의 외교적 실패로 보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협상이 깨지면 불리한 것은 한국이라는 식으로, 외교통상부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고, 밖으로도 그렇게 설명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점들을 미국이나 일본쪽이 악용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미국과의 협상을 오래 해 온 외교관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러 가서명 단계에 이를 때 즈음에 미국쪽에서 ‘깜빡 잊은 것이 있다’며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곤 한답니다. 한국 정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한국 대표단이 당황하면 ‘그럼 가서명을 연기하고, 다시 협상을 시작하자’는 카드를 들이민다는 겁니다. 가서명 날짜를 맞추지 못하면 대외적으로 ‘결렬’이라는 결론으로 비칠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한국 대표단을, 미국 대표단이 계속 압력을 넣어서 끝내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결론을 내리곤 했답니다. 물론, 이런 수법들을 미국이 많이 써왔던 터라 이제는 통하지 않겠죠.
무엇보다 한-일 FTA 중단 선언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한국 외교부도 좀더 과감한 외교적 전략을 택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참고로, 저는 97년부터 99년까지 약 2년 4개월 정도를 외교통상부를 출입한 적이 있습니다.한마디가 너무 길었습니다.)
미스터 재팬은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재개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일본쪽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가장 한-일 FTA에 대해 강경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김현종 본부장 후임자와 함께 FTA 협상을 재개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는 외교가의 판단을 전해 들은 바 있습니다.
그럼, 일본은 왜 한-일 FTA를 바랄까요. 왜 우리는 부담스러워 할까요.
한 마디로, 일본 제조업체들이 정복하지 못한, 거의 유일한 자유무역국가가 한국이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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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대학로에서 열린 한-미 FTA 반대 집회장 풍경.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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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원하는 중국
반면, 중국은 어떨까요. 중국 외교관(이 역시 ‘미스터 차이나’로 부르겠습니다)의 솔직한 답변.
“우리는 한-미 FTA가 이뤄지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한-미 FTA는,미-중 FTA로 가기 위한 초석이 되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외국과의 FTA 협정 체결을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중국은 한국과 중국간에도 FTA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FTA를 원하는 이유는 일본과 정반대입니다. 90년대 중반부터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아직 개척해야 할 상품 시장이 무궁무진합니다. 한국 시장은 물론, 미국과 유럽시장, 아세안 시장 등등.
한국과 미국의 FTA는, 상대적으로 FTA가 공백상태였던 동북아에 FTA의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중국은 판단하고 있는 듯 합니다.
한-중-일 FTA에 대한 동상이몽
미스터 차이나는 뒤이어 “한-중 FTA 뿐만 아니라 한-중-일 FTA도 이뤄지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미스터 재팬은 한-중-일 FTA의 성사 가능성에 대해 질문했을 때 고개만 갸웃거리고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의사표현에 신중한 일본인의 기질을 봤을 때 저는 그걸 ‘부정적으로 본다’이라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가능하지 않을 것이란 답변을 완곡하게 했다는 거죠.
일본쪽에서 보면 중국은 잠재적인 위협 세력입니다. 미국과 일본이 최고 수준의 군사동맹을 착착 진행시켜 가는 이유가 중국임을 크게 부인하지 않는 것이 일본 정부입니다. 무엇보다도 동북아에서, 아시아에서의 맹주 위치를 두고 중-일은 대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요즘 흔히 쓰는 ‘한-중-일’이라는 개념도 그 역사는 1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한-중 수교가 1992년이란 점, 그리고 중국의 본격적인 개혁 개방이 90년대 중반 이후 시작된 점을 감안해 보면 당연합니다.
(베이징-서울-도쿄를 연결한다는 이른바 ‘베세토’ 개념이 한-중-일 개념의 제일 첫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 베세토라는 개념과 용어를 정리해서 만든 분은 화장품업체인 한국폴라의 이청승 명예회장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베세토의 회장으로 일하고 계시죠.)
한국에서는 친숙한 한-중-일 개념이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그 관점이 사뭇 다릅니다. 참여정부가 집권 초기 내세웠던 ‘동북아 중심국가론’도 한-중-일 삼각 협력시스템의 중심에 한국이 선다는 것을 전제로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이 서로가 맹주가 되려는 상황에서 그런 식의 손잡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한-중-일 협력 모델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일본이 더 강하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그래도 한-미 FTA는 성공한다
미스터 재팬과 미스터 차이나에게 동시에 ‘한-미 FTA의 성사 가능성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습니다. 둘 다 “반드시 성공한다”고 단언하더군요.
협상 당사자들 간의 분명한 의지가 있고, 협상이 깨졌을 때의 손해가 협상을 깨서 지킬 수 있는 이익보다 더 클 것이란 판단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성사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을 아꼈습니다. 왜냐하면 그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판단 자체가 ‘기밀’ 수준이기 때문일 겁니다.
성공한다는 예측과 성공 또는 실패해야 한다는 당위는 전혀 다릅니다.
저 역시도 한-미FTA는 이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다만, 정부에서 간접적으로 밝히고 있는 내년도의 시한을 넘어서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한-미 FTA에 대한 견해는 저의 계속되는 탐색과 고민 속에서 점차 밝히기로 하고, 첫편은 이것으로 정리할까 합니다.
다음 후속 편들은 ‘이-마트와 코스트코 체험기’, ‘한 현직 의사가 바라보는 FTA’ 정도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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