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 김우창 교수와 공개좌담회
"이웃 국가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가치로 여기는 동아시아 시민 공통의 아이덴티티가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아이덴티티보다 더욱 강해질 수 있는 미래가 오리라 믿습니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ㆍ71)는 19일 오후 3시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10층 강당에서 문학평론가 김우창(69) 고려대 명예교수와 가진 '동아시아 평화비전을 향하여'라는 주제의 공개좌담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공통의 목소리를 내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우선 기조발언을 통해 "일본 정치인들은 장래 일본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역사 인식의 문제와 같은) 도덕적 문제에 관해 아시아인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현명한 방향을 생각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땐 시민들이 생각해내야 한다"며 "소설가로서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오늘 정직하게 말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동아시아 국가들이 반목하는 현실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 뒤 "1945년 일본이 전쟁에 지면서 아시아에 새로운 평화공존의 가능성이 생겼다"며 "현대 일본인들이 전쟁에 졌다는 사실을 미래를 위해 계속 가져가려는 의식이 있는가 하는 문제가 현재 일본인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동아시아가 국가들이 편협한 민족주의를 극복해나가지 않으면 동아시아의 미래는 없다"며 "한국, 중국, 일본 국가들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해도 인터넷 등을 무기로 한 시민 연대가 그런 대립과 반목을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희망"이라고 이야기했다.이어 "미국과 유럽이 '동아시아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을 하는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큰 차원의 동아시아 시민 아이덴티티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며 "내 세대에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우창 교수는 "동아시아에서 현재 반목과 갈등이 심하다는 것은 동아시아가 그만큼 강해졌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며 "그러나 그런 갈등을 회복하는 데는 힘의 균형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삶과 이웃의 삶을 의식하는, 문화적 의식을 통한 문화적 균형이 회복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보였다. 오에 겐자부로가 제시한 '시민 아이덴티티' 개념에 대해 김 교수는 "시민들이 횡적인 연대를 통한 아시아적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면서 독도 문제를 들어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역사인식을 비판했다. 그는 "독일과 폴란드의 영토 경계를 보면 그동안 수차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했고 독일에서도 여러 차례 새로운 경계를 확인한다고 말했다"며 "그러나 일본의 경우, 한국과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일본은 충분한 도덕적 판단이 서있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반성이란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잘못했을 때 다시 함께 살아가기 위해 거치는 과정"이라며 "동아시인들이 서로 더불어 살아갈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역사적 사실에 대해 사과할 것은 사과할 텐데 (사과하지 않는 것을 보면) 다른 동아시아 국민이 '더불어 살아갈 사람'이라는 인식이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더불어 사는' 공동체 성립의 단계를 제시했다. 그는 "자기 정부를 '도덕적으로 행동하라'고 비판하고, 이웃 국가와 관계를 올바로 정립하고,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한편 문화적으로 그것을 확대해나가야 한다"며 "이런 부분에 대해 바로 문학인과 지식인들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활발하게 진행 중인 한일 문화교류가 한일관계 갈등 해소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오에 겐자부로는 "한류, 한국에서의 일본소설 붐 등에서 보듯 동아시아에서 문화 공통의 기반이 확대되고 있다"며 대중문화 교류가 동아시아적 가치를 결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일례로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일본에서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의 중년층에게 '낙담과 소외감'과 같은 동질적 정서를 전달해주고 있는 점을 들었다. 그런 측면에서 오에 겐자부로는 오히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일본(정부)은 그런 (문화 공통이 확대돼가는) 현상을 젊은이들에게 '보지 말라'고 하면서 현재 동아시아가 추구하고 있는 가치의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오히려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일본 문화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인 대다수는 야스쿠니 신사를 단지 전쟁에서 죽은 사람들이 영이 돼서 머물고 있는 곳으로 생각한다"며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는 그것이 일본의 미래를 열어주는 '큰 길'로 생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독도 문제에 관해 "한국인이 들으면 화날 일이지만 독도가 영토차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은 거의 없다"며 "단지 정치인들이 편협한 민족주의를 이용하는 수단으로써 제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독도문제를 그런 민족주의를 야기하는 성냥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자칫 다이너마이트가 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하수처럼 흘러가는 것이 진정한 민족주의로 과거 일제강점기 때 한국인들이 보여준 것이야말로 진정 올바른 민족주의"라고 말한 그는 (현재 일본의) 다이너마이트 같은 민족주의는 분명 잘못된 민족주의라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일본 국민과 동아시아 국가의 시민들이 함께 나아갈 방향으로 '프루덴셜(prudential)'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프루덴셜'은 '나와 다른 사람을 위해 미리 어려운 일에 부딪히지 않게 행동한다'는 뜻"이라며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피해를 주지 않는 것, 그것이 민족주의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 일본 총리의 행동은 결코 '프루덴셜' 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대산문화재단과 교보문고 공동 주최로 마련된 이날 좌담회는 윤상인 한양대 일문과 교수의 사회로 2시간가량 진행됐으며 학생, 일반 시민 등 300여 명이 이를 지켜봤다. 이준삼 기자 jslee@yna.co.kr (서울=연합뉴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