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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09 07:04 수정 : 2006.08.09 16:50

아베 신조 일본 관방장관이 존경하는 인물은 에도(江戶)시대 말기의 존왕양이(尊王攘夷)론자였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다.

요시다는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등 메이지(明治) 유신의 주역들을 대거 길러낸 인물이다. 아베와 같은 야마구치(山口)현 출신인 그는 일본 근대사에서는 메이지 유신의 아버지 같은 혁명의 선각자로 높이 평가되고 있지만 정한론을 주장한 인물이기도 하다.

아베는 요시다를 "용기를 갖고 개혁을 추진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晋'과 부친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의 `晋'은 요시다의 제자인 다카스기 신사쿠를 흠모해 그의 이름 `晋'에서 따온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도 요시다를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로 자주 거론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 해 말 스승과 제자 사이였던 요시다와 다카스기의 관계를 언급하며 자신을 요시다로, 아베 장관을 다카스기로 넌지시 빗대기도 했다. 요시다와 다카스기 모두 1869년 야스쿠니 신사가 세워진 후 처음으로 야스쿠니에 합사됐던 인물들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야마구치현은 정한론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를 비롯 전전과 전후를 포함해 일본의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 중에서는 가장 많은 7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아베가 총리가 되면 8번째 야마구치현 출신 총리가 된다.

아베의 `우파적' 성향은 집안 혈맥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된다. 아베는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정치적 DNA를 물려받았다는 평이 자연스럽게 따라다닌다.

만주국 개발을 주도한 기시는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으로 처형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내각의 상공장관 등을 역임했었다. 기시는 태평양 전쟁 개전 관여 등으로 패전과 동시에 `A급 전범 용의자'로 수감됐다가 1948년 석방된 사람으로, 천황을 보필해 `성전'을 수행하는 군국주의 정치운동을 한 `익찬(翼贊) 정치가'였다. 일본 정치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그가 불기소로 석방된 정확한 배경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기시 역시 학창시절 요시다 쇼인 등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석방후 정치무대에 복귀한 그는 1955년 결성된 자민당 초대 간사장, 외상을 거쳐 57년 총리로 취임, 60년 일본 전후 외교사에 남는 미일안보조약 개정을 실현시켰다.


뛰어난 정치 수완 등으로 `쇼와(昭和)의 요괴(妖怪)'로 불렸던 기시는 자주헌법과 재군비, 경제보다는 정치 우선 노선을 내걸었던 자민당 우파의 `원조'였다. 점령군에게 정신을 무장해제된 일본이 진정으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자주헌법'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정치 신조이자 일생의 정치 목표였다. 기시는 자신의 또다른 정치 목표였던 미일 안보조약 개정은 총리직을 내놓으면서까지 관철시켰으나 개헌은 `비원의 과제'로 남겼다.

안보조약 개정 당시 초등학교 입학 전의 6살이었던 아베는 조부 기시가 못다한 개헌 관철을 자신의 최대 정치 목표로 삼고 있는 듯하다. 1955년 자민당이 결성됐을 때의 두가지 목표 중 `경제 회복'은 달성됐으나 `일본의 독립'은 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형식상 이루어졌을 뿐 점령시대에 강요에 의해 만들어진 헌법과 교육기본법 체제가 전후 지금까지 존속되고 있다는 게 그의 기본 시각이다. 군사, 안보 문제에 대한 강경 노선도 기시의 그것을 닮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아베는 고이즈미 총리와 함께 `기시(岸)-후쿠다(福田)-아베(安倍)-미쓰즈카(三塚)-모리(森)파'로 이어지는 자민당내 매파 계보에 속해 있다. 자민당의 `보수본류'였던 다나카(田中)-다케시타(竹下)-하시모토(橋本)파로 이어지는 `온건파'와 첨예하게 대립해온 파벌이 아베의 정치 계보다.

아베 집안과 고이즈미 집안의 인연도 `강성 아베'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고이즈미 총리의 아버지 고이즈미 준야(純也)는 기시의 충복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준야 역시 패전후 공직에서 추방됐던 익찬 정치가 출신으로 공직 복귀후 기시의 후광을 업고 정계에 복귀했다. 그는 한반도 전쟁 발발시의 자위대 극비 작전계획이 담긴 `미쓰야(三矢) 연구'가 폭로돼 엄청난 파문이 일었던 65년 당시 방위청 장관을 지낸 `방위족'이었다. 준야는 미쓰야 연구를 주도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고이즈미의 할아버지 마타지로(小泉又次郞) 역시 전전에 중의원 부의장과 체신장관을 지낸 익찬 정치인으로 도조의 전쟁 수행에 협력한 죄로 공직서 추방됐던 인물이다.

아베의 주변에는 난징 대학살과 위안부 강제동원 등을 부정하는 `극우' 인사들이 포진하고 있다. 실제 아베는 그동안 이러한 우파 세력의 역사인식 등을 대변하는 보수 언론의 인터뷰 등에 자주 등장하는 등 `보수 논객' 행세를 해 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대미 인맥도 네오콘에 편중돼 있는 편이다. 이 때문에 아베가 집권하면 `우익'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주변에서 나오고 있기도 하다.

yskim@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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