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 “쇼와천황 ‘황군병사’ 전장 보내”
일본의 유력 요미우리(讀賣)와 아사히(朝日) 신문이 자국의 패전일인 8.15 61주년을 이틀 앞둔 13일 전쟁의 책임 소재를 지적하는 기사와 사설을 실었다. 요미우리 신문은 '전쟁책임검증위원회'를 꾸려 지난 1년간 '검증 전쟁책임'이라는 제목 아래 일제 침략전쟁을 검증하는 기획 기사를 게재한 데 이어 이날 결산격으로 2개 면에 걸쳐 전쟁의 각 국면에 걸친 책임자의 실명을 들고 책임 소재와 경중을 따졌다. 이 신문은 침략전쟁을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3국동맹과 남진, 일.미 개전, 전쟁계속, 특공.옥쇄, 본토결전, 원폭투하와 소련참전 등 8개 국면으로 나눠 분석했으며 분석결과가 '잘못된 전쟁'의 교훈이 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신문은 침략전쟁의 출발점을 '만주사변'으로 잡고 이시하라 간지 당시 관동군참모 등의 사변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으며, 일.미 개전(태평양전쟁)에서는 도조 히데키 당시 총리, 중.일 전쟁에서는 고노에 후미마로 당시 총리 등의 책임이 무겁다고 분석했다. 또 신문은 과거 침략전쟁이 쇼와(昭和) 시대인 1931년(쇼와 6년)에 발생, 관통한 만큼 '쇼와 전쟁'이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호칭이 당시 쇼와(히로히토) 천황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현재 일본에서는 침략전쟁을 두고 '대동아전쟁', '태평양전쟁', '15년 전쟁', '아시아.태평양전쟁', '제2차 세계대전', '그 전쟁', '과거의 전쟁' 등 각각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아사히 신문은 사설에서 이른바 '대동아전쟁'은 중국에 대한 침략전쟁의 연장.확대였으며 일본의 침략을 인정, 그것이 가져온 참상을 응시하는 것 외에 '전후의 시작'은 없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만주사변을 일으킨 중심 인물이었던 이시하라 간지 당시 관동군참모와 고노에 후미마로 당시 총리의 전쟁 책임이 무겁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실질적 권한과는 별개로 쇼와천황은 육해군을 통수, '황군'의 병사를 전장에 보냈다고 상기시켰다.그러나 종전 직후 쇼와천황에게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당연했지만 도쿄재판에는 출정조차 요구받지 않았다면서 이는 천황의 권위가 전후 통치에 필요했던 미국의 판단 때문이었다고 덧붙였다. 사설은 때문에 천황은 전후 신헌법 아래 평화국가의 상징으로서 살아남은 것을 무거운 임무로서 스스로에게 부과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지홍 특파원 shin@yna.co.kr (도쿄=연합뉴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