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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14 21:07 수정 : 2006.11.13 16:40

 “나라 잃고 남의 나라로 끌려간 혼들이 죽어서도 돌아올 길이 없구나. 총 맞아 죽고, 매 맞아 죽고, 억울하게 죽어도 돌아올 길이 없구나. 불쌍하고 잔인하구나. 다시는 피비린내 안나는 곳에서 평화롭게 지내기를. 다시는 피흘리지 않게 전쟁없는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거라….”

14일 오후 일본 도쿄 메이지공원에 모인 한국·대만·일본인 800여명은 만신 서경욱씨의 ‘최영장군당굿’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국·대만·일본 시민단체가 꾸린 ‘야스쿠니반대 공동행동’이 기획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반대·무단 합사 취소 촉구 문화제 가운데 하나로 기획된 이날 굿은 강제로 태평양전쟁에 끌려가 목숨을 잃고, 죽어서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4만9천여명의 넋을 달래는 행사였다.

서씨가 북·꽹가리 소리에 맞춰 전쟁터로 끌려간 이들의 처절한 고통,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몬 나라에 영혼마저 묶인 채 호국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이들의 기막힌 아이러니, 이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후손들의 죄스러움을 차례차례 이어갈 때마다 공원에 모인 이들은 때로는 한숨을 쉬고 때로는 눈물을 훔쳤다. 섬뜩한 창춤과 화려한 칼춤에 이어, 서씨가 맨발로 작두 위에 올라서자 메이지 공원은 순식간에 숨을 멈췄다. 서씨는 5분여 동안 작두 위에서 영혼을 저당잡힌 이들을 모셔오겠다는 다짐과 이들의 후손에 대한 축원을 보냈다. 그가 평화의 의지와 축원이 담긴 쌀을 나눠주자, 참석자들은 행사에 참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야스쿠니 신사에 반대하는 신념으로 모인 대학생을 가릴 것 없이 모여들어 한줌씩 받아들었다.

저녁 7시50분께 이어진 촛불집회에서는 참석자들이 대형을 맞춰 촛불을 들어 ‘야스쿠니 반대’(YASUKUNI NO)를 써 보였다. 이들은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중단하라”, “전쟁피해자들의 야스쿠니 신사 무단합사를 즉각 취소하라”고 외쳤다. 이에 앞서 집회 참가자들은 공원 곳곳에서 평화의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을 만들거나, 태평양 전쟁 피해자와 관련된 자료집 등을 나눠 주며 야스쿠니 신사와 전쟁에 반대하는 뜻을 일본 시민들에게 알렸다..


한편, 종전기념일을 하루 앞둔 이날 오전 야스쿠니 신사는참배객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신사 앞에서는 일본 극우단체들이 “참배에 찬성한다”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었으나, 실제 참배객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의 쾌유를 빌기 위해 신사를 찾았다는 도모유키 와카스기(35)는 “신사의 하나인 야스쿠니에 나처럼 개인적인 소원을 빌려고 오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며 “언론이나 극우단체들이 선동하는 것처럼 이 곳에 오는 모든 사람이 일본의 전쟁대국화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쿠누기 아키라(58)씨도 “야스쿠니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1945년 당시 역사와 미래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곳”이라며 “일본 때문에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에 와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한국과 일본의 미래를 설계하는 대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양국 대학생들의 모임인 ‘한일학생회의’ 회원 40여명은 야스쿠니 신사와 전쟁박물관 ‘유슈칸’을 둘러보며 야만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있었다.

대학에서 불교를 전공하는 일본의 한 대학생은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이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알리기 위해 ‘사적으로’ 참배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억지일 뿐”이라며 “일본인들 스스로 야스쿠니가 어떤 곳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고, 1급 전범들을 분사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은정(21·숙명여대)씨는 “서너살 짜리 꼬마들을 신사에 데려오는 일본인 부모들을 보면서, 그들이 무슨 내용을 가르치는지,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지 궁금했다”며 “민족주의에 지나치게 치우쳐 이들이 과거를 답습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도쿄/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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