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2.26 16:56
수정 : 2006.12.2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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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당 내각이 만들어낸 겨울 사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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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사쿠라'를 일본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꽃을 가리키는 '사쿠라'.그리고 또 하나는 동원된 관객, 자작극에 동원된 사람을 일컫는 '사쿠라'다. 어느정도 연배의 분들이시라면 , 한 세대 전의 한국의 정치판.특히 선거철이 되면 'XX는 사쿠라다'라고 하는 것을 들어보신 기억이 있을 것이다.
'사쿠라 꽃이 피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때 아닌 '겨울 사쿠라'가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발단은 올해 10월31일 일본공산당에서 내각부가 추진한 교육개혁 타운 미팅에서 자작극을 연출한 것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일본의 '타운미팅'이란 각 지역 주민의 의견을 듣고,정부의 정책을 설명하는, 말하자면 공청회나 정책설명회 같은 것이다. 여기서 정부 당국자는 주민들에게 설명을 하기도 하고, 주민들의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여기서 '사쿠라'를 동원했다는 것이 야당측의 주장이었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 밝혀진 '사쿠라' 동원은 참으로 놀라웠다. 정부의 교육기본법개정에 찬성하는 의견을 말하고, 질문을 하도록 내각부와 교육청이 사전에 원고를 작성했을 뿐만 아니라 '짜고 치는 고스톱'이 들통나지 않도록 질문방법까지 상세히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 발각된 것이다.
그것은 한번이 아니고 전국을 순회하면서 여러번 '연기 지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오이타현의 타운미팅에서는 현의 교육위원회 직원 4명이 일반시인 척 하고 질문까지 하는 코미디를 연출하고, 참가자 확보를 위해 70여차례에 걸쳐 지방자치단체 직원을 동원하는 것도 모자른지 사전에 '골치 아픈 질문을 하는 사람'을 미리 선별하여 참가자 추첨에서 떨어뜨리는 등 치밀한 연기지도까지 했다는 것이다.
'돈으로 해결될 문제냐?' 에 '버럭!'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국민과의 대화를 하는 자리에서 정부의 의도대로 여론을 유도하고, 국민의 입을 사전에 막아버리는 일련의 행동에 정부가 개입한 것은 민주주의의 역행이자 , 국민 기만이라는 것이다.
언론의 질타가 이어지자, 아베 신조 총리는 결단을 내렸다. 내각의 수장으로써 책임을 지고, 월급(약 100만엔) 3개월치를 국가에 반납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두고 야당에서 '이게 돈으로 해결될 문제냐?'하고 따지자, '돈으로 해결하다니? 그말은 좀 실례가 아닙니까?!' 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여당이 주도하는 교육기본법 개정안은 참의원에서 가결되고, 야당은 반발하여 내각 불신임 결의안과 책임자의 문책 결의안을 제출했으나 워낙 여당측에 숫자로 밀리는지라 의회에서 부결되고 단지 야당측의 '투정'으로 '사쿠라' 극장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교육기본법 개정안은 자칫하면 교육이 '애국심'의 강요로 변질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일본내에서도 야당뿐만 아니라, 일본 변호사 연합·교육법학 학회 등 많은 사회·시민단체들이 반대를 하고 있는 법이다. 그런 개정안을 '사쿠라'를 동원하면서까지 통과시키고자 하는 일본 정부를 보니 안타까움을 넘어 측은함마저 든다.
그런데, 불평 불만을 말하지 않고 묵묵히 노력하는 것이 아무리 일본식 '미덕'이라지만 이 정도 자작극이면 화를 내도 되지 않을까? 지난 선거에서 일본 국민들은 여당인 자민당에게 압승을 안겨주었다. 자작극에 속았다는 것을 알고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아주 유감이지만 내 생각엔 결과는 같았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진정한 연기'를 본적이 없는 사람은 '싸구려 사쿠라 연기'를 보고도 만족하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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