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납치 집착’ 대북협상 거부…6자 회담 걸림돌
아소 외상도 “진전 없으면 1엔도 못준다”
개헌절차 강행·군 위안부 강제성 부인까지
아베 정권의 일본이 변화를 거부하며 뒷걸음질치고 있다.
아소 다로 일본 외상은 3일 후쿠오카에서 한 연설에서 “납치 문제에서 진전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우리는 1엔도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북쪽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7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북-일 국교정상화 워킹그룹 회의를 앞두고 한 말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2·13 합의’ 전인 2월9일에도 거의 똑같은 말을 했다.
협상을 거부하는 이런 일본의 자세는 앞서의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와 닮았다. 지난해 10월 북핵 실험 때까지만 해도 부시 행정부는 그랬다. 11월 중간선거의 패배,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든 이라크 문제, 그리고 이란 핵 위기를 맞아 부시 행정부는 전쟁의 실패를 자인하고 외교로 돌아왔다. 북한 핵 문제에서 미국은 현실적인 정책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북한과의 진지한 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여전히 유엔 대북 결의를 능가하는 강력한 제재를 고수하면서 납치문제 해결만을 외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 역시 그랬다. 6자 회담 재개를 거부하면서 방코델타아시아(비디에이) 문제 해결만을 외쳤다. 하지만 1월 23일 베를린 북-미 협의를 마치고 베이징에 온 6자 회담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모든 것은 변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기자가 ‘비디에이 문제 해결 없이 북한이 핵 폐기 협상에 응할 수 있느냐’고 질문한 데 대한 답변이다. 그의 말대로 북한과 미국은 변했고, ‘2·13 합의’는 다른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6자 회담은 새로운 합의로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과거를 붙잡고 있다. 국내 정책에서 온건 행보를 내보였던 그는 3일 야당의 반발을 무릅쓰고 예산안을 강행처리했다. 또 개헌절차를 담은 국민투표법안의 연내 처리를 공언했다. <아사히> <니혼게이자이> 등은 3, 4일 각각 그의 이런 태도를 지지율 하락 속에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게 4월 지방선거와 7월 정권의 운명을 건 참의원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분석했다.
고이즈미 노선으로의 역류도 엿보인다. 그는 군대위안부 문제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과거 일제의 군대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다는 뜻의 그의 발언은 한국·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미 외무장관회담을 마친 뒤인 2일 워싱턴에서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진실을 정확히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기자들은 아베 총리의 발언에 대해 ‘한-중 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를 나타냈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은 자유국가이므로 나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회 답변과 기자회견에서 요즘 그가 ‘고이즈미류’의 거친 목소리를 선보이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딜레마다. 그는 우선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었던 고이즈미가 아니다. 또 지론인 헌법 개정 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지방선거(4월)와 참의원 선거에서 연금문제 등 국민생활 중시의 정책에 힘을 쏟고 있는 자민당 의원들과 마찰이 불가피하다. 게다가 <니혼게이자이>의 지적처럼, 고이즈미로의 회귀는 아시아 국가와의 외교관계 개선이라는 애초 목표와 모순된다. 4월엔 지방선거와 원자바오 중국 총리의 방일 그리고 6자 회담의 새로운 전개가 예상된다. 일본도 새로운 선택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강태호 기자, 도쿄/김도형 특파원 kankan1@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