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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5.28 15:56 수정 : 2007.05.28 15:56

일본 현직 농림수산상의 자살이 안팎에 충격을 주고 있지만 일본에서 고립 상황에 처한 개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은 그다지 낯설지 않다. 특히 일본에서는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유명인사들의 자살이 잇따라왔다.

마쓰오카 도시카쓰(松岡利勝.61) 농수상은 28일 낮 도쿄도내 아카사카 의원회관에서 목을 맨 채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숨졌다. 최근 그는 정치자금을 둘러싸고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던 만큼 이것이 자살과 관련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치인의 자살 가운데 세인의 뇌리에 남은 사건은 2005년 8월 자민당 중의원 의원이었던 나가오카 요지(長岡洋治.당시 54세)의 자살이다. 그 역시 집에서 목을 맸다. 재선 의원이었던 그는 고이즈미 정권의 우정민영화법안에 반대한 가메이파 소속이었지만 중의원 본회의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뒤 "배신자"라는 손가락질에 시달리던 끝에 목숨을 끊는 선택으로 내달았다.

같은해 2월에는 세이부그룹의 주식보유 허위신고로 검찰의 조사를 받던 고야나기 데루마사(당시 64세) 전 사장이 자택에서 넥타이로 목을 매 목숨을 끊었으며, 지난해에는 논문조작이 들통난 오사카대 연구진의 조수 1명이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들 자살 사건의 공통점은 자살을 선택한 이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부류이지만 명예롭지 못한 스캔들에 휘말렸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승승장구하며 지도적 위치에 섰으나 그러한 기반 자체가 송두리째 부정될 도덕적 위기에 처하자 구차한 변명 대신 자살의 외길을 선택한 것이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명예를 위해서는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다는 봉건시대 무사의 할복 자살문화를 가졌으며, 태평양전쟁을 거치며 전세가 급격하게 기울자 이 문화를 엽기적으로 변용한 이른바 '가미카제'(神風)의 자살특공대를 동원, 연합군 함대의 진군을 저지하는 최종선택을 통해 서구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최고의 일본 분석서로 꼽히는 '국화와 칼'이 "일본인은 미국이 지금까지 전력을 기울여 싸운 적 가운데 가장 낯선 적"이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것도 자살공격의 충격 탓이었다.

전후(戰後) 일본에서도 이러한 전통은 이어졌다. 2차대전 후 최대 스캔들로 꼽혔던 록히드 뇌물사건에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의 운전수가 자동차 배기가스로 자살했고 정계 유력인사들에게 불법정치자금과 뇌물을 뿌려 문제가 된 1989년 이른바 리쿠르트 스캔들 때는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당시 총리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전직 비서가 손맥 동목을 끊어 자살했다.

소설 '금각사'를 쓴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가 1970년 우익과 군부의 궐기를 호소하며 육상자위대 동부방면 총감부에서 할복자살한 것이나, 그의 스승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가스관을 물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일본인들의 뇌리에 뚜렷이 남은 대형 자살사건에 속한다. 특히 이들 작가의 자살은 자살 자체가 아름다운 종말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일본인들에 뿌리내리게 했다.


최근 일본 사회를 들끓게한 자살 유형은 이른바 '이지메(집단괴롭힘) 자살'이다. 지난해 남녀 중학생이 이지메를 호소하는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한 뒤 유사자살이 잇따르면서 '광풍'(狂風)처럼 번졌다. 경기불황을 거치며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과정에서 과로로 인한 자살과 노령화 사회에서 우울증에 걸린 노인들의 자살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일본 정부는 자살자 수가 1998년 처음으로 연간 3만명을 넘어선 이래 2005년까지 8년 연속 3만명을 웃돌고, 어린이들의 자살이 잇따르자 최근 2016년까지 자살을 20% 줄이는 목표의 '자살종합대책대강령'의 초안을 마련, 다음달 확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불명예를 두려워하고 생사를 스스로 선택한다는 관념이 강한 일본인들의 바탕 인식이 바뀌지 않는한 제도적조치가 제대로 먹힐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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