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참패로 추진력 잃은 상황 속 “논의 심화” 고집
‘연금·소득격차’ 등 삶의 문제 견줘 국민 관심 낮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30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정치이념으로 내세운 ‘전후체제 탈각’의 핵심인 개헌문제에 대해 “앞으로 확실히 논의를 심화하겠다”며 절대 포기하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헌법문제는 선거전에서 상세하게 얘기할 시간이 없었다”면서 선거에서 참패했다고 해서 자신의 이념까지 부정당한 것은 아니라는 게 그의 논리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선거 초반 자민당의 정책공약을 통해 ‘2010년 헌법개정안 발의’ 등 개헌문제를 주요 선거쟁점으로 제기한 바 있다. 연금문제가 핵심쟁점으로 떠오르자 선거쟁점에서 슬그머니 빼내 아껴두었을 뿐이다.
아베 총리의 이런 집념과 달리 일본 정국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우선 이번 선거결과 여당은 개헌통과에 필요한 참의원 3분의2 의석 확보는커녕 과반수에도 크게 미달해 민주당에 정국 주도권을 넘겨줬다. 민주당 내에도 개헌론자가 존재하긴 하지만, 공식 입장은 아베 총리가 생각하는 개헌과 동떨어져있다.
민주당은 메니페스토(정책공약)에서 개헌문제와 관련해 “‘국민주권’ ‘기본적 인권의 존중’ ‘평화주의’라는 현행 헌법의 원리는 국민의 확신에 의해 지탱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자민당 내부상황을 보면 아베 총리가 현직을 계속 유지할지도 유동적인 상황이어서 개헌논의의 동력은 선거전에 비해 크게 떨어져 있다. 우선 당장 연립정부 파트너인 공명당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오타 아키히로 공명당 대표는 헌법 9조 개정 등 전면적인 개헌보다는 시대에 맞게 필요 최소한 정도로 손질을 하는 ‘가헌’을 주장해왔다. 그는 30일 아베 총리와의 회담에서 “헌법보다는 생활을 중시하는 정책을 펴달라”라고 주문했다. 연금불안, 격차문제 해결을 내세운 ‘생활이 제일’이란 구호를 내세운 민주당의 돌풍에 말려, 공명당은 9석밖에 건지지 못하는 참패를 당했다.
여론의 동향도 호의적이지 않다. 〈요미우리신문〉이 선거기간 중 6차례 실시한 선거쟁점 조사에서 헌법개정 문제는 연금 등 9가지 쟁점 중 가장 관심도가 낮았다. 개헌반대를 전면에 내세운 공산당과 사민당이 선거 전보다 의석을 잃은 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일본 유권자에게 그만큼 호헌문제가 절실한 선택과제로 다가오지 못했다는 뜻이다.
〈마이니치신문〉은 31일치 사설에서 “총리가 내각의 최대 과제로 자리매김해온 헌법개정은 이번 선거에서 실현하기가 한층 어렵게 됐다고 봐야 한다”면서 “그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민주당과 협조노선을 꺼내도 국회운영은 진전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올 가을 집단적자위권 행사용인과 관련한 전문가회의의 결론을 아베 총리가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헌법논의의 향방을 점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헌법해석상 금지된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 아베 총리가 발족시킨 전문가회의는 현재 행사용인쪽으로 의견을 집약한 상태이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자민 비주류 “아베 물러나야” 압박 주류 진영은 사태 수습 잰걸음 역사에 남을 참패를 당했음에도 퇴진불가를 선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반발이 자민당 내 반아베 진영에서 표출하고 있다. 지난해 총재 선거에서 아베 총리와 대립했던 다니가키 사타카즈파는 30일 밤 도쿄 시내에서 가진 소속 의원 모임에서는 “이렇게 선거에서 대패하고 계속 총리직을 수행하는데 대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명확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와 대립해 온 가토 고이치 전 간사장도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역사적인 패배를 하고도 일본의 정치는 변하지 않는다고 국제사회가 평가 절하하는 것 아니냐”며 “민의를 정확히 수용하지 않으면 자민당은 깨지고 만다”고 총리직 사퇴 거부를 비판했다. 마스조에 요이치 참의원 정책심의회장은 “뒤에서 매일 (각료의 문제발언 등의) 탄환이 날라왔다”며 “이런 각료를 누가 임명했는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참의원 자민당 간부도 “총리는 곧장 그만뒀어야 한다”며 “이대로는 내각지지율이 한자리 수가 된다”고 불만을 표시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보도했다. 그러나 비주류와 달리 자민당 내 주류 파벌들은 일사분란하게 아베 총리를 용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베 총리의 출신 정파인 마치무라파 회장인 마치무라 노부타카 전 외상과 시오자키 야스히사 관방장관은 30일 이부키 분메이 문부과학상, 쓰시마 유지 의원, 고가 마코토 전 당간사장 등 각 정파 대표들을 찾아가 아베 총리의 향후 정권 운영에 협력을 당부했다. 이들 파벌 영수들도 일단 아베 총리의 퇴진불가 선언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9월중 개각과 당직개편 때 자파 의원들의 각료 및 당간부 진입을 겨냥해 일단 사태전개를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