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9.03.11 14:41 수정 : 2009.03.11 14:41

중학생 두발 형태, 카고시마현 변호사회가 ‘인권침해’라고 권고 <마이니치 신문 2009년3월6일> 카고시마현 아마미의 공립 중학교에서 남학생에게 두발 형태를 강요하는 교칙은 ‘학생의 인권침해’라고 해, 현 변호사회는 6일, 그 교칙의 폐지를 요구하는 권고서를, 현 교육위원회와 11개 시읍면 교육위원회에 보냈다.

박박 깎은 머리 모습, 이른바 ‘이부머리’에 검은 교복을 입은 중학생들이 학교에 갑니다. 교문에 들어설 때는 걸음을 멈추고 운동장 가운데에 `찬란히` 나부끼고 있는 국기를 향해 거수 경례를 하고, 그런 모습을 교문 안쪽에 전날의 숙취로 고약한 입김을 내뿜으며, 눈을 부라리며 서 있는 학생부 선생, 그리고 가슴에 단 노란 ‘학생부’라는 뱃지를 세상을 얻은 듯한 기분으로 달고 있는 학생부원들의 감시를 받으며 학교로 들어갑니다.

겨울에는 교복 위에 방한복을 입습니다만 색깔은 검정이나 짙은 파란색에 한했으며 조금이라도 다른 색이 들어가 있을 경우 가차 없이 압수 당해, 땅바닥에 팽개쳐져 쌓여 있었습니다. 나중에 교무실에 불려가 얼굴을 심하게 가격당한 후, 잔소리를 들어야 했죠. 그리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교과 과정 중, 얼룩 군복을 입고 받는 이른바 교련이라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운동장을 연병장 이라 하고, 반, 학년, 전교 등을 중대, 대대, 연대 라고 불렀죠. 그리고 아직 십대인 소년들에게 목총을 쥐여 ‘적의 목을 베고, 가슴을 찔러라’라는 살상 교육을 무서운 얼굴로 시키는 전직 군인이 ‘선생’이었죠.

아, 지금 말씀드리는 이것은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반도, 경성’의 어느 학교의 풍경이 아닌, 제가 중고등 학생 시절의 ‘한국, 서울’의 풍경이었습니다. 제가 아직 그런 나이는 아니랍니다. 그러던 중,이른 바 두발자유화, 교복 자율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 돌연의 ‘사태’에 선생들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다니던 학교의 교무주임 이라는 직책의 선생이 있었습니다만, 자칭, 일제시절 경성의 ‘좋은 집안’의 자식으로 아마도, 텐노의 ‘교육칙어’를 가장 먼저 열심히 외었을 것 같은 국어 선생이었습니다. 국어…

이 선생이 엄숙히 말씀하시길, “정의 사회 구현을 위한 결단의 하나인 교복 자율화에 따라, 너희들은 사복을 입게 되지만 학생답고 야하지 않은 복장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교복과 정의 사회 구현이 어떤 관계인지, 학생다운 것이 어떤 것인지, 또한 10대 소년들의 ‘야한’ 복장이란 어떤 것인지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카고시마현 이야기로 돌아가서, 변호사회는 “삭발은 아마미 지방의 전통, 문화, 관습이라고 하는 학교도 있지만, 이것이 인권을 침해하는 이유로 성립 되지 않는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일본의 큐슈·오키나와의 일부에는 현재도 이런 교칙이 남아 있어, 카고시마현의 경우, 공립 중학교 126개중 46개교가 이런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고 합니다.

카고시마 변호사회에는 지난 2월부터 중학생의 두발 형태를 강요하는 교칙에 대해 반대하는 학생의 보호자로부터 인권 구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변호사회측은, “행복 추구권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과 어린이의 의견 표시권을 보장하는 ‘어린이의 권리 조약’, 개인의 존엄을 존중하는 교육기본법에 전부 저촉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학부모 중에도 “삭발이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대로도 좋은 것은 아닌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전통으로써 계속해 온 것.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었다는 의식도 생긴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흔히 말하는 ‘전통’이니 ‘문화’니 ‘관습’이니 하는 인식의 문제가 여기 있다고 봅니다. 중학생의 이런 삭발에 대한 풍습이 생긴 것은 일본이 군국주의의 길로 들어서며 시작되어 국민 총동원령이 내려진 시절의 ‘전통’입니다.

불과 100년도 되지 않은 군국주의에 의한 강제를 관습이니 전통이니 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정말로 전통 운운하고 싶다면, 차라리 근대 이전의 일본의 머리 형식을 한다면 (예를들어, 촘마게라고 불리는 일본식 상투) 차라리 이해가 가지요. 결국 전통도 문화도 관습도 아닌,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가두어 둘려는 의식과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관념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습니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말을 하기 이전에 ‘우리’란 무엇이고 ‘뭐가’ 좋은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없으면 우리라는 낱말로 타자를 만들어 배척하고, 좋다라는 낱말로 모든 나쁜 습관을 포장해버리는 식의 ‘고인사회’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