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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미 다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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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평화헌법 지킴이’ 나선 전 적군파 의장 시오미 다카야
육순에 주차관리, 첫 육체노동
금융위기 보며 다시 ‘혁명’ 꿈꿔 지난 3일 저녁 7시30분께 일본 도쿄 시부야역 근처의 ‘미야시타 공원’. 레이브 음악이 범람하는 흥겨운 노동절 시위 행진을 마치고 돌아와 뒷풀이를 하고 있는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 머리카락이 희끗한 60대 후반의 노인이 눈에 띄었다. ‘9조 개헌 저지’라는 빨간 어깨띠를 매고 있었다. 다가가서 말을 붙이고 보니 낯이 익은 인물이었다. 지난해 같은 노동절 행사 때 그가 객석에 있던 20대 젊은이로부터 “지금은 무장투쟁 안하느냐”고 야유를 받던 장면이 떠올랐다. 1969년 ‘공산주의자동맹적군파’(적군파)를 결성해 “무장봉기를 통해 세계공산주의혁명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창하며 파출소 연속습격사건, 총리관저를 습격하기 위한 군사훈련 등을 주도한 시오미 다카야(68·사진) 전 적군파의장이다. 그는 70년 3월31일 적군파 그룹의 요도호 납치사건 결행 직전 체포돼 이 사건의 공동정범 등으로 기소돼 19년9개월간 감옥생활을 한 끝에 1989년12월 출소했다. 한때 일본의 레닌으로 불리며 무장투쟁도 서슴지 않았던 그가 평화헌범 지킴이로 변신한 까닭은 무엇일까? “과거의 무장투쟁노선에 대한 반성”과 “대중과 함께하는 운동”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전쟁부정과 교전권 포기를 담은 일본국 헌법 9조는 일-미 안보동맹에 의해 공동화돼 있기 때문에 원상회복돼야 한다. 젊은시절 자본주의를 타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했지만 지금은 이를 반성하고 있다. 좀더 민주주의적으로 외연을 확대하고 노동운동과 결합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자신이 속해있는 ‘9조개헌저지 모임’의 멤버와 함께 매년 비정규직 노동절 데모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요즘 일본 젊은이들의 경쾌한 데모에 전혀 위화감이 없다고 했다. “지금의 일본사회가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30여년 전에 비해 성숙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폭력보다는 윤리나 도덕문제가 더 중시된다. 기동대와 충돌하는 것보다는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감성적으로 어필하는 게 좋다.” 그러나 그는 1972년 군사훈련과정에서 ‘공산주의화’라는 명목으로 동료 14명을 살해해 학생운동을 궤멸상태로 몰아넣은 ‘연합적군사건’에 대해서는 직접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반체제 성향의 와카마쓰 고지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형화 <실록 연합적군-아사마산장에로의 여정>은 당시 사건의 실상을 처음으로 내재적으로 접근해 적나라하게 보여줘 일본사회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나는 감옥에 있었기 때문에 연합적군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다. 서로 노선이 다른 중국 마오쩌둥주의자(혁명좌파)와 트로츠키주의자(적군파 일부세력)가 우리(연합적군 지도부)에게 숨기고 야합을 해서 신당을 만들었다. 숙청을 긍정하는 그룹의 영향을 받아 그렇게 됐다. 조그만 차이도 인정하지 않는 일본좌파의 나쁜 전통도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총을 든다고 해서 반드시 동료살해로 이어진다는 생각은 인정할 수 없다.” 교토대에 입학해 학생운동에 투신한 이후 40년 넘게 강연료, 부인의 내조, 동료들의 도움으로 생계를 꾸리다시피하던 그는 66살이 넘어서 육체노동을 시작했다. 2007년 12월 이후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시급 1천엔의 주차장 관리인으로 1년 5개월째 일하고 있다. “60이 넘은 나이에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자신을 갖게 됐다. 그동안 ‘지도자’연하면서 다른사람들로부터 지원을 받고 살아왔지만 내가 민중들의 삶을 얼마나 몰랐는지 알게 됐다. ” 40살의 외아들도 아버지가 처음으로 땀흘리고 일하는 모습에 기뻐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주간신쵸>와 <산케이신문> 등 우파언론은 왕년의 투사의 변신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혁명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듯했다. “지금의 금융공항은 과잉생산으로 인한 구조적인 것이기 때문에 최저 10년은 계속될 것이다. 그 사이 세계는 더욱 더 격동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러면 세계혁명의 가능성은 없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를 대비해 주체를 어떻게 만들지가 중요하다.“ 도쿄/글 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사진 황자혜 <한겨레21>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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