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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히 교장을 지지하는 시민들과의 토론회에서. 왼쪽에서 두번째가 도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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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에 도히 교장의 정년 퇴직은 다가오고 있었고, 도히 교장은 학교에 남아 학생들을 길러내고 싶다는 생각에서 ‘퇴직후 비상근 교원 채용 시험’ 을 치렀습니다. 이 시험은 평균 합격율 98%의 시험으로 교원 시절 경고나 징계등을 받지 않은 보통 교원이라면 누구나 합격하는 시험이죠. 그런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도히 교장은 불합격 처분을 받습니다. 이 결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교육위원회가 자신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은 자세에 앙심을 품고 도히 교장을 교육 현장에서 밀어내려 했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도히 교장은 도쿄 교육위원회를 제소한 것이었습니다. 도히 교장이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도히씨가 도쿄대에 재학중이던 시절은 일본이 학생운동으로 타올랐던 시기인, 이른바, ‘안보투쟁’ 시대였습니다. 친구, 동급생들이 학생운동에 참여하고 경찰에 체포되는등의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것을 보며, 도히씨는 갈등했지만 거기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동경대의 졸업장`이 갖고 싶었고, 졸업후,편하게 살고 싶었죠. 본인의 생각대로 ‘무사히’ 졸업하고, 일류 대기업에 취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회 현장에서 본것은 담합,부정등으로 얼룩진 모습과 거기에 두말 없이 동참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였죠. 그것에 대해 상사에게 이야기 하자, ‘좋은게 좋은거다’ , ‘사회란 다 이런거다’ ,‘튀지 말아라’ 등의 말들이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도히씨는 동급생들의 인생을 건 투쟁의 의미를 알았고, 후회를 했습니다. 도히씨는 새 세대를 참된 ‘시민’을 길러내는것이 민주 사회를 만드는 기본이라고 생각해, 속칭, ‘잘나가는’ 회사를 관두고 교직 생활로 들어왔습니다. 열혈 교사로 시작해 교장의 위치까지 올라 왔어도 그의 ‘바른말’ 은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은 거대 권력인 도쿄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투쟁을 벌이게 된것입니다. 일본에서도 3류 파시스트 이시하라가 도지사를 하고 있는 도쿄의 교육위원회는 나날이 우경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고, 생각있는 대부분의 교직원들은 거기에 대해 저항하고 있습니다. 일본내의 이런 양심적 또는 보편적인 시민 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권력의 부당한 억압에 대한 저항이 성과 있는 결실을 맺기 바라며, 도히씨와 같은 분들의 정당한 분노에 렬렬한 지지와 련대의 마음을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외침을 소개합니다. 「‘옳다고 생각한 것은 그대로 말하라’고 가르쳐 온 내가, ‘옳은것은 옳다’라고 말하지 못하고 권력에 굴복하면 학생들에 대한 책임을 질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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