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만주에는 일본의 허수아비 국가인 만주국이 있었고, 거기에는 만주인을 비롯해, 중국인, 몽골인, 일본인, 조선인등이 살고 있었습니다. 일본인은 일부 계층이 일본 관동군이나 만주국의 고위 관료였고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본토에서 이주 온 가난한 농민들이었습니다. 소련군이 진격해 오자, 당시 만주를 마치 자기 나라인양 주무르고 있던 `극동 최강`이라던 관동군은 도망가기에 바빴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국민을 방패삼아 도망 할 시간을 벌기 위해 피난 열차를 관동군 장교 하사관, 그리고 일부 병사만 타게 하고, 일반 국민들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도리어 소련군과 맞서 전투를 할 예정이니, 다들 임전태세에 들어가라고 선전을 합니다. 그러나 물밀듯이 밀려드는 소련군등에 의해, 사실이 발각되어 일반 국민들이 피난 열차로 몰려들자, 병사들이 총칼로 막고, 열차에 올라 타려는 많은 피난민들을 사살합니다. 만일 이들 관동군이 어느 지점까지 일단 후퇴를 해, 전열을 가다듬어 소련군과 대항하기 위해 그런 행위를 했다고 한다면, 억지로라도 이해할 여지가 있다고도 볼수 있습니다만, 그것이 아닌 단순히 자신들만 살아 일본으로 도망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소련군은 만주에서 사로잡은 구일본군, 민간인(조선인 포함) 들을 대거 시베리아 개척수용소로 보냅니다. 그 숫자는 약 60~70만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 중 강제 노역과 혹한, 기아로 약 10%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시베리아 억류` 문제입니다. 그후, 1947년 부터 1956년에 걸쳐 이들 일본인에 대한 귀국 사업이 전개됩니다만, 일본으로 귀국한 이들 앞에는 또다른 비극이 시작됩니다. 즉, 오랫동안의 소련 생활에서 이들이 공산주의자가 되었다는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되죠. 일본의 공안 경찰은 시베리아에서 풀려나 귀국한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게 됩니다. 즉, 그들 민중은 본토에서는 먹고 살기 어려운 서민, 빈민이었고, 반강제로 만주로 보내어져 농사를 짓고 살다가, 군국주의에 의해 버려지고, 소련군에게 잡혀 강제 노역을 하다가, `고국`에 돌아오니 `사상범`으로 감시를 받는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참담한 생각이 드는 것은, 자국의 서민, 빈민들을 만주로 내 몬것은 일본 군국주의 세력이 었습니다. 군국주의 군대의 보급을 위한 측면도 컷지요. 그리고 사정이 급해지자, 자국민을 버리고 사살까지 합니다. 그리고 강제 노역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을 감시 체계에 넣은것 또한 살아남은 `군국주의` 잔당이었습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린것 처럼 일본의 전후 프레임을 짰던 것은 아메리카 (거의 맥아더)와 살아남은 군국주의 잔당이 었습니다. 당연히 그 죄를 받아야 했던 세력들을 아메리카는 자국의 이익과 `반공`이라는 명목으로 살려 내어 자민당을 만들게 하고 군국주의 잔당 들은 `화려한 복귀` 를 해, 그들의 지배 체제를 굳힌것이었죠. 특히, 만주에서 고급 관료로 음으로 양으로 온갖 추악한 악행을 일삼던 기시노부스케 (전 수상 아베 신조라는 자의 외할아버지)가 만주에서는 자국민들을 죽이도록 하고 자신은 본토로 도망쳐, 그 후, 겨우 살아 귀국한 자국민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경찰이 감시토록 한 것이 상징적입니다. (※기시 노부스케는 한일 국교정상화 작업의 주역이기도 합니다. 전 대통령 박정희씨등과는 만주군 인맥으로 절친한 사이였죠.) 그런 자신들의 목을 죄던 그 군국주의 잔당들에게 경제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약 50년간계속해서 정권을 잡게 해 준 일본 민중들을 저는 어이없어 했습니다. 그것이 올해 8월 겨우 바뀌게 되었지요. 한편, 한국 또한 맥아더,이승만등에 의해 과거 청산이 이루어 지지 않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군국주의 일본에 부역한 자들이 `화려한 복귀`를 했습니다. 이들은 과거 청산에 대해, 「경제 발전이 먼저다.」,「국론 분열을 조장하지 말라.」,「미래를 바라보자.」는등의 의미불명의 언사로 민중을 현혹 내지는 겁박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 입니까? 조선 왕조때 부터의 부패 기득권층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 시절에도 한/조선반도에 있어서 기득권 주류였으며, 해방후 현재에 이르기 까지 그 `파트너`만 하나 더해졌을 뿐인 기득권층입니다. 기득권층은 난세가 오더라도 난세를 이용해 더욱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천부적 자질`이 있는것 같습니다. 식민지 지배를 받은 한/조선 반도에서도 제국주의 일본에서도 그 어려움에 신음하며, 권력층의 악의적 장단에 맞춰 생명이 걸린 비극의 춤을 추었던 것은 일반 민중입니다. 기득권층은 조선, 일본 상관 없이 그들끼리의 리그로써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이런 민중들이 자신의 생명과 인간 다운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련대, 즉 `계급적 련대` 만이 그 살길 이라는 생각이 이번 도쿄 지방법원의 판결을 보며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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