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08 14:17
수정 : 2005.08.08 14:18
2차대전후 일본의 중의원 해산은 이번을 포함해 20번째다.
그때마다 해산 이유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이름이 붙었다.
이번 해산은 `우정해산'으로 명명될 가능성이 높다. 자민당 집행부는 `우정개혁해산'을 희망하고 있지만 야당에서는 고이즈미 총리의 독선에 빗대어 `화풀이 해산', `응석해산' 등 비판적인 명칭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 언론이 어떤 이름을 붙일지 주목된다.
화제가 됐던 주요 중의원 해산사례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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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야로(바보) 해산= 1953년 3월. 요시다내각. 중의언 예산위원회에서 사회당 니시무라 의원의 질문에 요시다 당시 총리가 "바카야로(바보. 멍청이)-"라고 욕설을 한 것이 발단이 됐다. 야당이 이 발언을 문제삼아 내각불신임안을 제출, 가결되자 요시다 총리는 중의원을 해산, 총선거를 실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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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안개 해산= 66년 12월. 사토내각. 각료비리와 자민당 정치가의 스캔들이 잇따라 드러나 국민의 정치불신이 깊어진 것을 계기로 사토 총리가 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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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프닝 해산= 80년 5월. 오히라내각. 자민당 주류파가 본회의에 대거 불참하는 바람에 예상을 뒤엎고 내각불신임안이 가결되는 바람에 이뤄진 해산. 첫 중.참의원 동시선거가 실시됐다. 오히라 총리가 선거기간 급서했으며 자민당이 대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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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척 해산= 86년 6월. 나카소네내각. 당시 나카소네 총리가 국회를 해산하지 않을 것 처럼 위장한 후 회기가 끝나자 폐회 직후 임시국회를 소집해 해산을 선포했다. 자민당이 크게 승리해 나카소네 총리의 임기연장으로 이어졌다.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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