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총리
현재 한-일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가장 큰 외교적 현안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8월 중순께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베 담화’(일본의 전후 70주년 담화)다. 아베 총리는 그동안 자신의 담화에 일본이 아시아 주변국들과 극적인 역사적 화해를 하는 주춧돌이 된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 표현인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20년 전 무라야마 담화의 주인공인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는 그런 아베 총리의 자세를 비판하며 일본이 역사 문제에 좀 더 성실히 마주할 것을 주문했다. 아베담화 각의 안거치면 개인 발언중요한 것은 내용인데
“과거 담화 계승한다”면서
침략에는 의문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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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2일 오이타현의 사민당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만나 아베 신조 총리가 8월에 내놓게 되는 ‘아베 담화’와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간의 주요 외교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20년 전 무라야마 담화를 세상에 내놓은 주인공이다. 오이타/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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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답변·발언 종합하면 약간 걱정
이쪽 대비하면 상대는 한층 더 대비
걱정 있다면 외교 노력하는 게 먼저 20년 전 전후50년 담화 발표 때
각의 결정 안 되면 사임할 각오
그 뒤 일한관계 완전히 새 시대로 -당시 총리의 뒤를 이어 후임 총리가 되는 자민당의 하시모토 류타로(일본의 82·83대 총리·1937~2006) 총리가 담화에 담긴 ‘종전’(終戰)이란 표현을 ‘패전’(敗戰)으로 바꾼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것은 뭐랄까, 그가 그렇게 말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종전이든 패전이든 전쟁에 진 것은 틀림이 없으니까. 그는 당시 전몰자의 유족들의 모임인 일본유족회의 회장이었다. 내가 그에게 전화를 했다. 나중에 얘길 들었지만 유족회 안에서도 그 점(패전이라는 사실)은 분명히 하는 게 좋다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었다고 한다.” -현재 담화에서 주목을 받는 것은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란 부분이지만, ‘독선적인 내셔널리즘을 배제해야 한다’는 구절도 있다.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이란 어느 국민들이든 갖는 자연스런 것이다. 그라나 자기 국가를 사랑하기 위해선 다른 국가의 마음도 알아야 한다. 일본 국민이 갖고 있는 애국심과 다른 국가들에서 저마다 갖고 있는 애국심은 완전히 같은 것이다. 애국심이 우리에게만 있는 것이라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면 전쟁이 일어난다. 전쟁은 독선적인 애국심, 내셔널리즘이 원인이 돼 발생하는 것이니까 이를 경고한 것이다.” -무라야마 담화를 내놓은 뒤 일본과 한-중 등 주변국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했나. “담화를 낸 뒤 한국, 중국, 아세안(ASEAN)의 국가 등을 방문했을 때 여러 분들이 담화에 대해 평가를 하고 받아들여줬다. 1998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에 와 (당시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공동선언(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발표했다. 그 선언의 앞부분에 (무라야마 담화를 인용한) 역사인식과 관련된 언급이 나온다. 이를 통해 양국간의 문화가 개방되고 일한관계가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2008년에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일본을 방문해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양국이 전략적인 호혜관계를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맺자고 선언한 것이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일본과 주변국들이) 과거 문제에 대해 서로 트집을 잡는 일이 없어졌다. 아베 총리가 최근 이런 발언(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려는 듯한 발언)을 한 뒤 ‘아베 총리는 뭘 생각하는가, 과거의 담화를 부정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과 같이 문제가 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담화에 대해) 솔직히 답변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베 총리가 추진 중인 집단적 자위권 등 안보 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의회 등의 답변이나 이런 저런 말을 통해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역시 약간 걱정이다. 예를 들어 (현재 동아시아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나 다케시마(독도) 문제 등이 있다. 또 남중국해의 중국의 기지 확장 등에 대해서도 베트남이나 필리핀 등에서 경계심을 갖고 있다. 이런 불온한 상태에 대해 ‘일본도 이대로라면 위험하다. 뭐가 있을 경우에 대비해 일본을 지킬 수 있는 대비를 해야 한다’며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등이 포함된 안보 법제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위기감이 있다고 이쪽에서 대비를 하면, 상대는 자극을 받아서 더 한층 대비를 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예로부터 전쟁이 발생해 왔다. 이에 견줘 나는 그런 걱정이 있다면 서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해서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외교 노력을 하는 게 먼저가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아베 총리와 나 사이엔) 역시 차이가 있다.” -현재 한-일 사이의 최대 현안은 위안부 문제다. 총리 시절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 여성기금(1995~2007)을 만들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선 (위안부의 강제성과 군의 개입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가 있었다. 고노 담화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경과를 조사해, 관련된 사실을 시인한 뒤 이는 잘못된 일이라고 사죄를 한 것이다. 이후 (1994년 6월 무라야마 내각이 출범할 때) 후계 내각으로서의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여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논의를 했다. 정부나 자민당에서 ‘(1965년 체결된) 일한조약으로 배상 문제는 해결이 됐다. 지금 와서 (배상 등은)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이 강해 그 벽을 부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이외에 (다른 방식으로) 뭔가 속죄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할 결과 정부가 돈을 내지 않는다면, 국민이 대신 속죄를 한다는 선의의 마음으로 국민 모금을 하는 ’아시아 여성기금‘을 만들게 됐다. 그러나 모금 자체로는 돈이 부족하니까 정부가 보험이나 의료 문제 등에선 협력해 돈을 지원했다. 그래서 모금(일인당 200만엔의 속죄금)과 정부의 돈(일인당 300만엔의 의료지원금) 등 양쪽을 더해 드리게 됐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나쁘니까(부족하니까) 총리의 사죄의 편지를 넣어서 가능하다면 상처받은 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는 의미를 포함시켰다. 그러나 속죄금(쓰구나이킨·償い金)라는 말에 대해 여러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한국에서) ‘위로금’(미마이킨·見舞金)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한국의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은 ‘위로금 같은 돈은 받으면 안 된다. 역시 정부가 책임을 갖고 제대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 말의 의미는 알겠다. (한·일간의 배·보상 문제는 1965년의 한일협정으로) 남김없이 전부다 모두 해결됐다는 전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아시아 여성기금을 진행했지만 한국에선 정대협 등의 저항으로 3분의 1 정도밖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미해결로 끝나고 만 것이다.” -이런 결과에 실망했었나. “한국에게 일본의 선의에 대해 설명을 했다. 한국에서도 ‘잘못이다’는 반응은 그다지 없었다. ‘(일본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국가가 더 책임을 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아사히신문>이 위로금이라고 기사를 썼다. 그 인상이 계속 오래 남았다. ‘위로금 같은 동정하는 것 같은 돈은 받지 않겠다’는 거부 반응이 나왔다. 속죄금이라는 말이 한국엔 없는가? 출발 당시에 좀 더 간절하게 준비를 했었다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쉬운 일이다 ” -아베 정권 아래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 보나? “한국 속담에 ‘매듭은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역시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만든 것이니까 일본이 풀어야 한다. 그래서 일본의 총리가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다는 의사표현을 명확히 하고, 한국의 대통령이 일본 총리의 취지를 받아들여 사무 당국이 절충을 통해 내용을 좁혀가는 것 이외는 방법이 없지 않을까 한다.” -현재 일본 분위기에서 그런 것들이 가능할까? “이것은(위안부 문제는)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서로 삐걱대지 말고 빨리 결론을 짓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아베 총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고노 담화에 대해서도 확증이 없다고 여러 얘기를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고노 담화를 계승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일 간의 우호 협력을 위해 한국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서로의 입장이 있고, 국내 정세도 있어서 단순히 말하긴 어렵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고 해도 이웃 나라니까 서로 양보하고 협력해서 좋은 발전을 해 나가야 한다. 이웃이 서로 으르렁대서 좋은 일은 하나도 없다. 한국인들도 일본인들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길 바라는 마음은 같다고 생각한다. 그런 솔직한 마음을 소중히 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어려운 것을 어렵다고 생각하면 어려워진다. 서로 인간들끼리 마음을 열면, 결국 서로 같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건강은 어떠신가? “나이가 들었으니까. 특별히 나쁜 데는 없다. 이젠 늙었으니까.”(웃음) 오이타/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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