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8·15 추도식에서 ‘깊은 반성’과 ‘추도의 뜻’을 입에 담지 않았다는 사실이 화제로 떠올라 많은 비판이 제기됐지만, 일본 언론들은 오히려 일본이 한국 등 주변국을 배려한 것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을 언급한 것에 대해 긍정적인 사설을 쏟아내며 앞으로 한-일간 안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을 잊지 않았다.
일본 주요 언론들은 16일 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새롭게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 데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본 보수의 정서를 대변하는 <요미우리신문>은 사설에서 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양국간 관계 발전의 중요성을 호소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역사 인식을 문제로 일본에 주문을 걸지도 않았다. 박씨가 역사 문제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자세를 고친 것은 (양국간) 관계 개선에 기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도 한국 등 주변국을 향해 적잖은 배려를 했음을 드러냈다. 신문은 그 예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포기한 점이나 극우적 정치 성향을 가진 이나다 도모미 방위상이 신사 참배를 포기하고 아프리카 지부티로 해외 출장을 나선 점 등을 꼽았다. 실제 신문은 “총리 주변의 한 인사가 이나다 방위상에게 ‘정치적 지혜를’ 짜내 15일 참배를 피하도록 조언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역사 수정주의적 정치관을 가진 이나다가 방위상의 자격으로 신사를 참배할 경우 한국이나 중국은 물론 미국에까지 외교적 파장을 끼칠 수 있음을 일본 정부 내에서도 우려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경원 의원 등 한국 국회의원 10명이 독도를 방문했지만, 일본이 이희섭 주일 한국공사를 초치한 수준에서 항의 수위를 조절했다는 분석을 내놓은 언론도 있었다.
진보 언론에서도 호평이 이어졌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온건했던 광복절 연설’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을 경계하는 말을 거듭하고, 위안부 문제의 조기 해결을 촉구해 온 지난해까지 (광복절 경축사와는) 달랐다. 일·한의 정치지도자들이 지난 수년 동안 내셔널리즘을 자극해 상호간의 국민감정을 악화시켜왔다.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난 것에 대해 환영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일본을 상대로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한-일 관계를 개선하면 어떤 협력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일본 언론이 요구한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해양진출에 맞서기 위한 안보협력이었다.
<마이니치신문>은 박 대통령의 경축사를 높이 평가한 뒤 “(현재)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점점 엄혹해지고 있다. 일·한 양국에게 미국을 포함한 3국 연대는 중요하다. 일-한 관계의 개선을 통해 안보협력을 발전시키고 싶다”는 속내를 밝혔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정보를 더 긴밀히 공유할 수 있는 일-한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체결을 서두르고 싶다. 한국의 사드 배치에 반발하며 북한 쪽으로 기우는 자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에 대한 대응도 일-한 공통의 과제”라고 밝혔다.
한국 의원들이 독도를 방문한 사실을 1면 톱으로 강하게 비판한 극우 <산케이신문>마저, 박 대통령이 사드 배치에 대해 강한 의지를 밝힌 데 대해 사설을 통해 “대통령이 (중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안보상 필요한 조처에 대해선 배치의 의의를 설명한 것은 매우 타당한 일”이라는 평가를 남겼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관련 영상] 거침없는 민심 역주행 /더정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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