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11.14 13:29 수정 : 2005.11.14 13:47

광기(狂氣)의 시대의 사형선고 '비국민'(非國民)

내 일본인 친구로부터 그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2차대전 당시 일본의 한 작은 시골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전쟁 탓에 민심이 흉흉하던 그 시절 일본에 있는 한국인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고 몰매를 맞거나 손가락질을 당하는 경우도 흔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할아버지가 살던 시골마을에 한 한국인이 도망쳐왔는데, 지치고 불안에 떨고 있는 그 한국인을 할아버지는 자신의 집에 숨겨주고 먹을 것도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후일 그 일이 타인들의 귀에도 들어가 그의 할아버지는 일본경찰에 잡혀갔고 숱한 고문과 협박을 당해 건강하던 몸은 망가지고, 그 후 '비국민'(非國民) 이라는 딱지가 붙게 되었다.

'비국민'(非國民) . 전시 일본에서 이만큼 무서운 말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전쟁 당시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할아버지가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시골의 한낱 농부가 이데올로기를 알겠는가? 뭘 알겠는가? 민족이 뭔지 대동아공영권이 뭔지도 모르는 시골 농부가 그 쫓기는 한국인을 왜 도와줬겠는가? 단지 연민과 따뜻한 정을 가진 인간'으로써 위험한 처지의 한 '인간'을 보고 나온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을 뿐이라고.

일본정부의 눈물나는 짝사랑

지난 11월 6일 후지모리 전 페루대통령이 일본을 떠나 내년4월의 대통령선거 입후보를 위해 페루의 이웃 나라인 칠레에 입국했다가 경찰에 의해 구속되었다. 재임 당시에 이루어진 민간인에 대한 살해, 고문 명령의 혐의로 페루에서 수배를 받아왔고 일본으로 도피한 이후로도 페루정부는 일본에 대해 신병인도를 강력히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그가 '일본인' 이라는 이유로 신병인도를 거부했고 후지모리는 장기간 일본에 체류해왔다(사실상의 망명생활) .


신병구속 직후 칠레의 일본대사관 직원이 후지모리와 면회를 한 것에 대해서 페루정부는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입국서류에 국적을 '페루'라고 적고, 페루 여권을 소지한 후지모리에 대해서 일본정부가 개입할 권리가 없다" 라고 하는 것이 페루정부의 목소리이다.

후지모리는 '망명지'가 된 일본에서 일본국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본은 이중국적을 허가하지 않는 나라이다. 게다가 후지모리 본인이 일본을 떠나 스스로를 '페루인'이라고 밝힌 마당에 일본대사관에서 면회까지 간 이유는 무엇일까?

본인이 페루인 이라고 하는데 일본은 끝까지 일본인이라며 일본인의 보호를 위해 대사관이 발 벗고 나섰다. 짝사랑도 이런 눈물나는 짝사랑이 있을까?? 아니면 '과거에' 일본인 이었던 사람에 대한 철저한 애프터서비스 정신일까?? 그렇다면 그 봉사정신에 숙연함 마저 느껴진다.

여기서 나는 앞에서 말한 내 친구의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일본에서 태어난 순수한 일본인에도 불구하고 광기(狂氣)의 시대에 양심적으로 행동했다는 이유로 일본인이 아닌 '비국민'(非國民)취급을 받고, 일본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페루인'이라고 생각하는 한 망명정치가를 끝까지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일본정부를 볼 때 설명하기 힘든 모순을 느끼는 것은 나 혼자일까? 후지모리가 '일본인'이라면 대체 그 기준은 무엇일까? 일본에서 일본국적을 취득하려면, 아니 적어도 '비국민'(非國民) 신세를 면하려면 양심을 버리고 '페루인'흉내를 내면 되는 것일까? '한류붐'으로 떠들썩한 일본에 바야흐로 '페루붐'이 불지 지켜볼 일이다. 아디오스 아미고~

|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