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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27 15:30 수정 : 2005.02.27 15:30

지난해 봄 청송 감호자에서 나왔다. 보호관찰 기간에 매달 한번씩 관찰소에 들러 동정을 보고하고 있는데도 경찰들과 담당 직원이 불시에 집을 방문해, 내 과거가 노출됐다. 피보호 관찰자의 형편을 헤아리는 열린 마음으로 대할 수는 없을가?

말 많았던 보호감호 제도가 폐지되고 일정 형량 집행을 유예하는 ‘필요적 보호관찰제’로 대체하는 법을 만든다는 기사를 봤다. 나 역시 피감호자의 한 사람이었고 지금도 보호관찰을 받고 있는 담 밖의 감호자이기에, 이런 변화에 무심하지 않다.

지난해 1월 신문에 청송 감호자 신분으로 글을 썼고 우여곡절을 겪은 뒤 어느 봄날, 여러 동료 수용자와 함께 한 서린 청송땅을 벗어났다. 감호기간에 가정이 파탄나고 출소 뒤 오갈 데 없는 막막한 상황이었지만, 담 밖으로 탈출(?)이라는 이유 때문에 희망을 품을 수 있었고 자유를 얻은 기쁨은 이루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희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청송 감호자는 사회생활 불가능자’라는 말처럼 감호기간을 통해서 가정은 파탄났으며 재정적 자립도는 전무했기에 자유를 찾은 기쁨은 단 하루 단꿈으로 끝이 나고 희망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해버렸다. 함께 감호소를 나온 대다수가 내 처지와 다를 것 없었기에 그들 역시 기쁨을 누린 시간은 고작 몇시간이었을 뿐, 이내 담 밖의 감호자란 현실에 절망의 눈물을 흘려야 했을 것이다.

이렇듯 피감호자로 하여금 사회 부적응과 재범으로의 길만 부추겼던 감호제도가 폐지된다고 하니 반가운 마음 가득하지만, 한편으로는 ‘진정한 보호관찰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들게 된다. 내 경우를 예로 들자면, 지난 10여 개월 동안의 보호관찰 기간에 매달 한번씩 관할 보호관찰소에 들러 나 자신의 동정을 보고하고 지도받고 있는데도, 내 주소지로 경찰서와 파출소에서 경찰들이 다녀감은 물론, 보호관찰소 담당 직원을 합쳐 모두 다섯차례의 불시 방문을 받았다. 가끔 찾아오는 경찰·법무 공무원으로 인해 내 과거가 노출됐으며, 주위로부터 곤란을 겪은 적이 허다했다. 감호 집행에서 비롯된 가정 파탄, 사회 적응력 부재에 대한 경제적 대책은 마련되지 않더라도 평범한 시민으로 환원될 수 있게 ‘보호관찰 업무를 피보호 관찰자 처지에서, 좀더 세심하게 해야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현재의 보호관찰처럼 감시만 할 것이 아니라 피보호 관찰자의 형편을 헤아리는 열린 마음으로 대하여 줄 수는 없는지를 관계자 여러분께, 나아가 정부와 사회에 묻고 싶다.

이제 3월이 되고 봄이 오면 25년을 이어온 청송보호감호소가 없어질 것이라 하니, 피감호자 생활을 했던 나로서는 잘못된 제도와 법을 고치려 노력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덧붙여, 법무부에서 대안으로 제시한 ‘필요적 보호관찰제’가 관찰을 받아야 하는 피관찰자의 처지에서도 검토되고 제도화돼 진정한 교정·교화의 꽃봉우리로 자리잡길 소망한다. 사회 적응력을 북돋아 주는, 말 그대로의 보호관찰(감시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순수한 지도와 관찰)이 이루어져, 잘못된 인생길을 걸었던 많은 전과자들에게 갱생의 활로가 열리길 재삼 기원한다.

정승환/서울 구로구 개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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