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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24 21:20 수정 : 2006.08.24 21:22

왜냐면

학교 졸업한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 교사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는 기억은 생생하다.

최근에 5분 지각한데다 머리가 길다고 학생을 200대나 때렸다는 교사한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선생님은 정말 그 아이를 위해 이백 대를 때리셨나요?”

우리 교육현실은 왜 이리 척박한지, 체벌을 포함해 아이들의 정상적인 성장과 성숙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여기저기 발에 차인다. 얼마 전 초등학생의 따귀를 때리며 아이를 향해 책을 집어던지던 초등학교 여교사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와 파문이 일었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교사도 많지만 아직도 교육현장에서 교사의 체벌은 무자비하게, 자주 발생한다.

나는 학교 시절, 학교에서 ‘싸이코’라고 소문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담임을 만나 체벌과 패대기질 앞에 늘 졸아들었다. 예순이 넘은 담임은 때로는 할아버지처럼 잘해주는 것 같다가 갑자기 여학생들을 교탁과 교실 마룻바닥으로 패대기쳤다. 사물함도 없고 신발장도 없어 신발주머니까지 들고 다니던 시절, 그 교사는 갑작스런 여름 소나기에 느닷없이 가방 검사해서 우산이 없으면 여자애들이 준비성이 없다며 때리고, 도시락 검사해서 보리 혼식 안 했다며 또 때렸다. 고등학교 때는 점수로 사람 패는 담임을 2년이나 만났다. 그러잖아도 고민 많은 중·고교 6년 중 3년을 지옥같이 보냈다. 나는 그런 지옥 속에서 공부고 뭐고 단지 친구를 만나러 학교엘 다녔고 ‘똑똑한’ 부모, 적어도 내가 당시 내 형편을 하소연할 수 있는 부모를 만났더라면 부모가 항의하러 오든지 아마 학교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기억의 왜곡과 각색 때문인지 그때 내가 맞은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교실 바닥으로 패대기쳐지는 친구들을 보면서 늘 무서웠다. 그 후 그런 폭력으로부터는 멀어졌지만 학교 졸업한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당시 교사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는 기억은 생생하다.

결혼 후 두 아이를 키우면서 큰아이는 공부를 적당히 하고 자존심이 있어 요령껏 매를 피해 갔지만, 작은아이는 중학교 시절 체벌 등 교사 폭력에 나처럼 치를 떨며 결국 학교를 자퇴했다. 그 아이가 중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반장인데도 모범을 보이지 않고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며 담임에게 머리채를 잡혀 교실 바닥으로 패대기쳐진 후 교무실에서 온종일 벌을 받던 날, 나는 부모로서 학교에 불려갔다. 벌 받는 아이나 이를 면전에서 봐야 하는 부모인 나나 피차 사람 못할 짓이었다. 결국 그 아이는 ‘세상에 맞을 짓은 없다’는 말을 남기고 학교를 제 발로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체벌은 나의 경우 대를 이어 화두였다. 그래서 체벌 금지엔 나의 온힘을 기울이고 싶다. 내가 능력이 부족하거나 몰라서 못하는 일이 있을지언정 알고도 안 하지는 않는다. 지금 제한적으로 허용되어 전부 허용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교사 체벌은 차제에 법제화해 금지해야 한다. 아울러 청소년 인권을 보장하고, 더 나아가 학생회도 법제화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누구든 법을 어기면 교도소에 갈 일은 있을지 모르나 세상에 맞을 짓은 없기 때문이다. 체벌, 이젠 지긋지긋하다. 체벌을 없애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체벌로 인한 부작용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체벌 금지는 법제화되어야 한다. 체벌 금지야말로 돈 안 드는 교육개혁 중 하나다.

김정명신/함께하는교육 시민모임 공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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