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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해이와 미래 세대의 반란을 보며 |
교육계뿐 아니라 온나라를 뜨들썩하게 했던 지난해 대규모 수능시험 부정사건이 검찰 수사와 교육인적자원부의 행정 처리로 마무리되었다. 부정행위로 인한 시험 무효처리 대상자가 363명에 이르는 큰 사건이었다. 재발 방지를 위해 내년부터는 시험장 입구에 금속 탐지기를 설치하며, 만일 부정 행위가 적발되면 3년 동안 응시를 제한한다고 한다.
일면 응당한 조처로 보인다. 어떠한 이유로도 시험 부정은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의 전말을 보면서 내내 가슴이 아리고 답답한 것은 무슨 연유일까. 수능 부정사건과 함께 지난 겨울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또하나의 사건은 교사와 학부모의 거래에 의한 내신 조작이었다. 학생들의 사표가 되어야 할 교사나 교장이 학부모한테서 대가성 부탁을 받고 학생 시험지를 대리 작성하거나 시험문제를 미리 유출한 것이다. 어느 대학교수는 논술 모범답안을 미리 빼내 수험생이 암기하도록 한 어처구니없는 모험도 감행하였다. 이게 될 말인가? 아니,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상상이나 할 법한 일인가?
나는 이것을 ‘학부모와 교육계 인사들의 극심한 도덕적 해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러한 일들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과정의 정당성보다는 최종 결승점을 누가 먼저 통과했느냐에만 관심을 두어 온 기성세대의 세태가 그 일반적 배경이고, 학생들이 무엇을 얼마나 제대로 아는지를 따지기보다는 성적표에 기재된 점수가 얼마인지만을 확인하는 우리의 교육 경쟁 방식이 특수 조건이다. 이 속에서 높은 점수를 만들기 위해 학부모들은, 값이 얼마든 적중률이 높은 ‘족집게’ 선생을 찾아 나섰고, 교사들은 쉬운 문제로 점수를 한껏 부풀렸다. 이 광란의 점수 만능주의 행태 속에서 참된 배움과 가르침은 실종되고 단지 돈으로 점수를 사고파는 행위만이 난무하게 된 것이다.
지나친 비약이고 불온한 생각이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말한다면, 학생들의 대규모 수능 부정 행위는 기성세대의 이런 도덕적 해이에 대한 미래 세대의 조롱이자 반란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미 그 추잡함이 다 드러났음에도, 계속되는 기성세대의 점수 엄숙주의에 대한 조롱이자, 새롭게 전개되는 지식기반 사회에서는 용도를 폐기해야 할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구태에 대한 반란인 셈이다. 만일 이런 생각이 조금의 적합성이라도 지닌다면 우리는 수능부정 사건에 대한 실무적 처리를 넘어 우리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재성찰과 혁신을 꾀해야 한다.
미래 세대는 누구인가? 그들은 감성 세대이고 영상 세대이며, 인터넷 세대이고 네트워킹 세대다. 선악과 호불호를 떠나서 최첨단 기술의 세례를 받고 자란 그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기호 등은 기성세대의 그것들과는 딴판이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 내용과 그들이 선호하는 학습 방식은 이제껏 익숙했던 학교 교육의 그것들과는 아주 다르다. 이것은 그들을 가르치고 평가하는 내용과 방식이 전적으로 달라져야 함을 의미한다. 학교와 교육제도의 운영방식도 마찬가지다.
이 당연한 사실이 교육 현실에서는 외면당하고 있다. 변화를 추진할 선도적 위치에 있는 교사들은 여건을 탓하며 기득권 유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변화의 방향과 방법을 제시해야 하는 학자들은 전체보다는 부분에 매몰되어 무력한 담론만을 반복하고 있다. 정책 당국은 변화의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구태에 안주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자녀의 먼 미래를 위한 배려보다는 눈앞의 성적과 입시에만 매달리고 있다.
참으로 일대 혁신이 요구되는 때다. 과감한 발상의 전환과 기득권 포기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 온 교육계가 발벗고 나서야 한다. 삼삼오오로 시작하여 나라 전체가 위기에 처하게 한 교육 난제 해결을 위해 치열하게 토론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오늘의 교육 현실을 보면서 100년 전 ‘시일야 방성대곡’의 심정을 금할 길 없다.
이종태/전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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