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21 21:40
수정 : 2006.09.21 21:40
왜냐면
협력과 견제를 통해 범죄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대처하고 권력독점에 대해서는 상호 견제해야 할 경찰과 검찰이 잘못된 수사구조 속에서 갈등만 지속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권력은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속성을 지녔다. 막강한 권한으로 나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 줄 것이라 믿었던 전제군주야말로 사실은 나의 권리를 침범할 위험이 가장 높은 존재였음을 깨닫게 된 순간, 인류는 권력의 속성으로부터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을 이끌어내게 된다. ‘분권을 통한 견제’만이 인권을 보호할 유일한 방법임을 역사를 통해 터득하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11일 법무부 장관의 “모든 수사에는 사법적 견제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은 의미가 크다. 이날 법무부 장관은 기자 간담회 자리에서 “수사권 조정은 편의만 가지고 판단할 성격이 아니다”라며 “국민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수렴해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사권은 인권과 직결되는 강력한 권한인 만큼 외부기관에 의한 객관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장관의 생각인 것 같다.
수사권 조정을 바라보는 경찰의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수사권 조정은 실제 사건 수사의 97%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경찰 수사에 법적 근거를 마련해 주자는 것으로, 강제수사에 대한 검사의 통제, 수사의 적정성에 대한 검사의 사후통제는 모두 받겠다는 것이 경찰의 의견이다. 현재는 검찰과 경찰이 명령-복종 관계여서 경찰 수사에 대한 검사의 객관적 검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검-경의 수사가 분리되면, 각 수사단계에서 양 기관은 더욱 책임 있는 수사를 하게 되고, 경찰 수사에 대한 검사의 객관적 통제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이제는 검찰도 사법적 견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대한민국 검찰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막강한 권한으로 우리 사회의 지배적 권력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검찰을 제대로 견제할 수 있는 기관은 현재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으며, 검찰은 강력한 권한으로 형사사법절차 전반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경찰에 대한 검사의 무제한의 수사지휘 또한 국민의 인권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최근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심사하겠다며 명확한 법적 근거도 없이 경찰서에 있는 피의자를 검사실로 인치할 것을 명령하여 논란이 된 검사의 ‘피의자 강제인치 명령’은,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모든 강제수사는 법적 근거를 가지고 해야 한다’는 헌법적 요청마저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었다. 피의자를 강제인치하기 위해서는 무장 경찰관 2~3명이 피의자를 포승줄로 묶고 수갑을 채워 체포영장에 특정되어 있는 구금장소가 아닌 검사실로 데리고 가야 하며 이 과정에서 피의자는 접견·수진권, 변호인 선임의뢰권 등의 권리를 침해받을 위험성이 높다. 그래서 법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도 법에 명확한 근거를 마련하고 난 후에야 실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사가 경찰관에게 이러한 지휘를 함으로써 경찰관은 법적 근거 없이 국민의 인권을 제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협력과 견제를 통해 범죄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대처하고 권력독점에 대해서는 상호 견제해야 할 경찰과 검찰이 잘못된 수사구조 속에서 갈등만 지속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은 분권과 견제라는 시대정신에 입각하여 60년간 곪아온 낡은 수사구조에 대수술을 시작할 때다. 새 법무부 장관 취임이 갈등만 드러낸 채 별다른 결론을 맺지 못하고 있는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를 재개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장성원 /경찰청 수사국 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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