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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12 18:53 수정 : 2006.10.12 18:53

왜냐면

국제 몰이사냥의 결과로 북 앞에 쳐진 덫이 ‘핵실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디어 핵실험을 공포하자 미국 주도의 강대국들은 모든 책임을 북에 뒤집어씌우고 있다. 핵실험 당사자인 북의 처지에서 사태를 직시하려는 열의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북한이 조선노동당 창건 기념일을 하루 앞둔 지난 9일 ‘핵 실험 성공’을 발표하였다. 돌연히 출현한 방송차들이 거리를 누비며 “인공위성 발사 성공 만세”를 외치던 1998년 평양의 여름이 불현듯 떠오른다. 황장엽 탈출을 빌미로 중앙당 초토화를 끝낸 군부가 선군혁명의 승리를 알리는 예식이었다.

내가 탈북한 뒤 국제적인 북한 문제 해결과정을 살펴보니 한마디로 몰이사냥 그것이었다. 사냥꾼들이 터놓은 단 하나의 외통길로 북 정권을 몰아가고 있었다. 북의 경제를 회생시키리라던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케도) 경수로며 미사일 수출, 일본인 납치자 문제 등 북 관련 사건 모두는 국제정치의 외교적 흥정거리에 불과했다. 케도의 경수로 건설만 약속대로 이행되었더라도 북의 경제는 회생되었을 것이다.

북한 제2경제위원회가 굶어 죽어가는 수백만 노동자들의 식량 해결용으로 시작한 미사일 장사도 1999년 북-미 베를린 회담 덕에 실패로 돌아갔다. 북쪽은 미사일을 팔지 않는 대가로 매년 30만달러를 요구했으나 고작 50만t의 한 차례 식량지원으로 그쳤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도 그랬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공식 사죄를 하면 그만한 정치·경제적 보상이 있으리란 물밑 약속이 있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는 김정일과 한 애초의 외교적 약속을 인권, 곧 인도주의적 문제로 탈바꿈시킴으로써 자기의 인기몰이에 이용하였다. 북한이 이런 식으로 여기저기서 쫓기며 전전긍긍하다 보니 그들로선 외부 협상의 길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결국 국제 몰이사냥의 결과로 북 앞에 쳐진 덫이 ‘핵실험’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디어 핵실험을 공포하자 미국 주도의 강대국들은 모든 책임을 북에 뒤집어 씌고 있다. 핵실험 당사자인 북의 처지에서 사태를 직시하려는 열의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북한은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정치적 불안과 경제 파탄, 사회 붕괴로 회생의 출구가 꽉 막혀 있다. 더욱이 주체사상과 그 시행규범인 10대 원칙은 북한인들의 생산적인 사고와 행동이 불가능하도록 묶어놓는 칼이 되었다. 이 전근대적인 환경 속에서 수령 중심의 주체사상에 기초한 10대 원칙 체제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개인이 유일하게 자기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미제’를 향한 증오심뿐이었다. 그 전엔 북의 고위급이 이런 ‘전쟁도 불사한다’는 사고방식의 표출을 은밀히 막아왔다. 북의 체제 유지에 비상이 걸리는 까닭이었다. 그런데 그 계층에서마저 이 마지막 출구를 열어놓는 데 동의한 것이다. 억압적인 주체사상과 10대 원칙이 소실되는 시기를 기다리기에 고위층까지도 지친 모양이다.

충격적 사변의 힘을 빌려서라도 변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북의 상황이 절박해졌든가 선군정치의 해체가 북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도라는 합의에 북의 고위층까지도 부지불식간에 도달해버린 듯하다. 외부에선 몰이사냥이 벌어졌다면, 북의 내부에선 핵실험을 구실로 한 강력한 외압의 개입을 이용해서라도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수위에까지 그 긴장과 불만이 고조되었다는 징조다. 사회발전의 합법칙성을 이해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시인할 수 있는 필연적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것이 우연한 일치일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제대로 된 안목을 지닌 정치가나 전략가라면 이번 사태는 역설적으로 북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로 보여질 것이다. 그럼에도 국제사회가 북 핵실험 문제를 경제제재나 가하는 종전의 방식으로 대처한다면 북한의 내일은 가망이 없다. 북은 이미 개혁·개방을 할 수 있었던 95~98년의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때와 같은 기회 상실이 이번에도 되풀이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박유진(가명) /2001년 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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