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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26 18:40 수정 : 2006.10.26 18:40

왜냐면

진실은 망각하려는 욕망과 기억하려는 의지의 싸움을 포함한다. 1987년에 있었던 대한항공 858기 사건(김현희 사건)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2006년 8월1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이 사건의 재조사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개인적으로 보고서를 살펴보면서 과거 안기부 수사 결과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문제점들을 많이 발견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이와 관련해 언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의 언론은 자기반성도 없고 자기역할도 없다.

첫째, 한국의 언론은 자기반성이 없다. 이번 발표의 일부 성과라고 할 수 있는 ‘무지개 공작’ 문건 발견에 주목해보자. 당시 “안기부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사업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해 사건 직후”부터 이 사건이 “북한의 공작임을 폭로·홍보하는” 공작을 전개했다. 이에 따라 언론은 안기부 자료 ‘받아쓰기’를 수없이 반복했고, 그럼으로써 대선사업 환경 조성에 열심히 동참하였다. 그리고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던 이 사실이 늦게나마 공식문서로 확인되었다. 자, 그러면 어떤 일이 뒤따라야 할까. 받아쓰기와 환경 정리에 헌신적으로 앞장섰던 당시의 모범생들, 그들의 반성문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언론은 안기부 자료 ‘받아쓰기’를 수없이 반복한 보도 행태에 조금의 반성도 하지 않는다.
혼신의 힘을 다해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은 대한항공기와 마찬가지로 ‘실종’되었는가.

그러나 어떠한가. 언론은 너무나 조용하다. 당시 자신들의 보도 행태에 대해서는 조금의 반성도 하지 않는다. 전혀 말이 없거나, “과거 정권의 부도덕성”으로 책임을 넘기는 수준이다.(다만 한달 뒤 경향신문의 어느 칼럼에서 언론의 문제가 약간 언급됐다.) 이것이 과연 언론의 바람직한 모습인가. 남의 부끄러움은 그토록 부지런히 들춰내면서 왜 자신의 부끄러움은 그토록 철저히 외면하는가.

둘째, 한국의 언론은 자기역할이 없다. 이번 발표의 핵심 결론들은 상당 부분 추정과 심증 수준에서 내려진 것들이다. 예컨대 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김현희 일행이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이라는 심증을 가지는 것에는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기자회견 다음날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담당 위원은 사건이 북에 의해 저질러진 것을 확인했냐는 물음에 대해, “강하게 심증을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 다시 말해 이번 재조사의 가장 핵심적인 결론이 물증이 아닌, 심증에 기초해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여러 가지 핵심적인 의혹들이 이번 발표에서 해명되지 못했다.

하지만 어떠한가. 언론은 너무나 태연하다. 이런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중간발표를 그대로 받아 쓰거나, “음모론이 끊이지 않던 대한항공기 사건에 쐐기를 박은 셈”이라고 말한다.(다만 몇몇 인터넷 언론과 〈한겨레〉는 중간발표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아울러 공중파 방송을 포함해 과거에 문제를 제기했던 언론들은 왜 가만히 있는 것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은 대한항공기와 마찬가지로 ‘실종’되었단 말인가.

진실은 스스로 말할 수 있는가? 이제까지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그 답이 ‘아니오’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진실이 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 언론을 고발하면서 던지는 물음이다.


박강성주 /경남대 북한대학원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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