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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30 17:54 수정 : 2006.10.30 18:35

왜냐면

내년부터는 불편하더라도 음식점에서 주문할 때 “삼겹살 ○인분 주세요”가 아닌 “100g 또는 200g 주세요!” 해야 될 것 같다. 산업자원부는 내년 7월부터 그동안 우리가 흔히 써 온 길이 단위인 자·마·리·피트·인치·마일, 넓이 단위인 평·마지기·정보·에이커, 부피 단위인 홉·되·말·석(섬)·가마, 무게 단위인 근·관·파운드·온스·돈·냥 등 법정단위가 아닌 말 사용을 금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길이는 미터·센티미터·킬로미터, 넓이는 제곱미터·헥타르, 부피는 세제곱미터·리터, 무게는 킬로그램·톤 등만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 이상이 계량 거래로, 1% 오차가 발생할 경우 약 2조7000억원이란 소비자 손실을 유발한다”는 설명까지 곁들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실생활에서 흔히 쓰는 넓이의 ‘평’은 정확하게 몇 제곱미터(㎡)일까? 정답은 ‘각각 다르다’이다. 토지는 3.3㎡이지만, 유리는 0.09㎡가 한 평으로 쓰고 있다. 논 ‘마지기’도 지역 따라 다르다. 경기지역에서는 1마지기가 495㎡이지만 충청지역에서는 660㎡, 강원지역은 990㎡다. 무게를 나타내는 ‘근’도 마찬가지. 쇠고기는 600g이 한 근이지만, 과일은 200g, 채소는 400g이 한 근이다. 실제 의류 제품에는 64, 67, 70㎝ 등 미터법으로 크기가 표기되어 있지만 치마나 바지를 살 때는 여전히 27이니 28이니 하는 ‘인치’ 단위로 주문한다. 가구를 구입할 때도 ‘몇 자짜리’로 따지고, 금도 3.75그램보다는 ‘한 돈’이란 단위가 훨씬 익숙하다.

계량단위는 오랜세월 국민생활에 뿌리내려온 관습의 산물이어서 단순한 단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를 기한을 정해 하루아침에 ‘강제 퇴출’시키겠다는 발상은 지나치다. 일상생활에서는 척관법을 함께 쓰는 이원화 정책을 펴야 한다.

이처럼 그동안 우리가 써 온 척관법인 자(척)·관·평·말(두) 등의 계량 단위는 그 표준이 모호하거나 일관적이지 못한 점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1961년부터 국제단위계(미터법)를 표준 법정 계량 단위로 채택하고 있으나 아직도 오래된 계량 단위를 사회 전반에 걸쳐 널리 사용하고 있다.

외국에서도 문화와 역사적 배경에 따라 다양한 계량 단위가 사용되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척관법, 1790년 프랑스 과학아카데미가 만든 미터법, 영국과 미국에서 많이 쓰는 야드·파운드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애초에 길이의 단위도 사람의 신체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피트는 발 길이, 인치는 엄지손가락 첫마디가 기준이 됐고, 야드는 코에서 손가락 끝까지 길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산업 표준화에 따라 혼란스러운 현재의 계량 단위를 표준 미터법으로 일원화해야 된다는 정부의 취지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부동산 중개업의 88%가 제곱미터 대신 평을, 귀금속 판매업의 71%가 3.75g 대신 1돈을 쓰고 있고, 식당에선 여전히 ‘몇 인분’이 쓰일 만큼 관습 또는 전통적 계량 단위가 우리 생활에 일반화돼 있다. 또한 재래시장이나 농촌 어르신들이 그동안 써 온 평이나 마지기, 되나 말을 미터법 변경 단위로 쉽게 응용하거나 숙지할지 의문이다.

계량 단위는 오랜 세월 국민 생활에 뿌리내려 온 관습의 산물이어서 단순한 단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를 기한을 정해 하루아침에 ‘강제 퇴출’시키겠다는 발상은 아무리 그 필요성이 크다고 해도 지나치다. 정부가 굳이 미터법 사용만을 고집한다면, 좀 과장해서 애국가 가사도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에서 ‘무궁화 1200킬로미터 화려강산’으로 바뀌어야 한다. ‘삼척동자’는 ‘91㎝ 동자’로 써야 할 판이다. 그래서, 미터법은 수출품이나 공산품 등에는 엄격히 적용하되 국민들의 일상생활에서는 척관법을 함께 쓰는 이원화 정책을 펴야 한다. 대다수 국민도 제곱미터·헥타르·리터까지는 아니더라도 미터·킬로미터·킬로그램·톤 단위는 이미 익숙하게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내년 7월부터 비법정 계량 단위로 표시된 계량기를 제작하거나 사용하는 경우, 심지어 소지하는 경우에도 징역형이나 벌금 등으로 처벌하겠다고 벼른다.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걸핏하면 국민을 전과자로 만드는 처벌만을 앞세울 게 아니라 꾸준한 계도와 홍보 안내, 기타 방법을 통해 미터법이 실생활에 자연스럽게 정착되도록 해나가야 할 것이다.

박명식 /출판업·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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