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0.30 18:01
수정 : 2006.10.30 18:01
왜냐면
최근 서울대 및 서울지역 주요 사립대의 2008학년도 입시안이 발표된 이후 대학별 논술고사를 두고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논술고사가 나름대로 학생들의 교육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의 가혹한 입시 교육 체제에서 논술고사는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
우선 학교 교육을 통해 논술을 준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우선 각 대학의 논술고사가 정상적인 고등학교 교육 과정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난이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언어, 수리, 외국어, 논리, 시사교양 등 전 범위를 넘나드는 통합교과형 논술은 애당초 고등학교 교육 과정의 체계와 전혀 맞지 않는다. 한마디로 학생들은 전혀 배워보지 못한 내용을 가지고 시험을 치르기를 강요받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전 범위를 넘나드는 통합교과형 논술은 애당초 고교 교육 과정의 체계와 전혀 맞지 않는다. 대학별 논술고사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계층은 고액의 사교육비를 지출할 능력이 있는 부유층의 자녀들이다.
사태가 이렇다 보니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과외나 학원 등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대학 입시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계층은 고액의 사교육비를 지출할 능력이 있는 부유층의 자녀들이다. 서민층이나 지방의 학생들은 너무나 불공평한 경쟁을 강요받는 것이다.
이러한 논술고사는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논술 교육을 왜곡한다. 논술이란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사회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을 그 근본으로 한다. 그러나 논술이 대학 입시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순간 논술의 본질은 사라지고, 오히려 더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단편적인 요령, 그리고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이기적 심성이 길러질 따름이다.
논술의 원조로 불리는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시험은 우리나라의 논술고사와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바칼로레아는 각 대학에서 자체적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시험이 아니라 평준화된 대학에 입학할 자격을 부여하는 대학입학 자격고사다. 즉 그 시험에서 일정한 점수만 획득하면 누구나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체제다. 또한 프랑스의 대학은 우리나라처럼 일류대학, 지방대학 하는 식으로 서열화된 것이 아니라 평준화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입시 부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독서와 토론, 글쓰기, 체험학습 등 다양한 교육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논술적 사유 및 글쓰기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의 다양성과 창의력을 중시하는 논술 교육의 취지 자체는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교육 과정의 개편, 학교 여건 및 수업 방법의 개선 등을 통해 이루어져야지 대학 선발고사를 통해 학교 교육을 바꾸려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과도한 사교육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공교육을 왜곡하는 대학별 논술고사는 폐지되어야 한다. 나아가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 서열화 체제를 해체하여 학생들을 가혹한 입시 지옥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그래야 공교육도 입시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에게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을 시킬 만한 여건을 갖추게 된다. 학부모는 과도한 액수의 사교육비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학생들은 다양한 독서와 토론, 창의적인 글쓰기를 통해 능력을 계발하고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찾아나갈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논술 교육의 시작이다.
이형빈 서울 이화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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