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1학기 교육과정협의회 때부터 나는 국사 과목에 재량수업 한 시간을 배당해 달라고 건의했다. 현재 부여된 일주일 두 시간으로는 고등학교 1학년 국사 교과서의 학습량을 따라갈 수 없고, 올해 국사 교과서의 근현대사 부분이 보강돼 진도 부담도 더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여전히 대학입시 주요 과목인 국어·영어·수학이 최고다. 재량 시간을 국사 수업에 배당할 것을 권고하는 교육부 공문도 소용이 없다. 인문고에서 이른바 중요 과목의 심화·보충은 꼭 필요하며, 독서·논술을 위해 재량시간은 배당해도 역사 교과에 재량시간을 줄 수는 없단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 사건이나 중국의 ‘동북공정’이 터질 때마다 언론에서는 우리의 부실한 역사 교육을 개선해야 한다며 목청을 돋우었다. 교육부도 지난 해 5월 국사와 세계사를 사회 과목에서 분리해 별도 과목으로 독립시키고, 부족한 역사 전공 교사를 확충하며, 고등학교 1학년 국사에 근현대사를 보강하고 늘어난 학습량만큼 재량활동 시간을 국사에 배당하는 ‘역사교육 강화 방안’을 발표하였다. 역사수업은 아이들 스스로 역사를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도 충분한 시간을 두어 진지하게 다뤄야…주당 두 시간의 수업 시수로는 이런 요구를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학교 현장은 변한 것이 없다. 우리 학교를 보면, 내년부터 모두 36 학급에 역사 교사가 달랑 두 명만 배치된다. 다른 학교 교사들도 같은 고민을 토로한다. 교육부가 역사교육 강화방안을 발표한 지 1년이 훨씬 지난 지금, 교육부의 약속은 어디로 갔는가? 국사 수업에 재량 시간을 배당하겠다는 약속도, 교육부의 권고 공문도, 7차 교육과정에서 재량시간 배정은 원칙적으로 학교 자율에 맡겨졌기 때문에 학교 자체의 의지가 없으면 아무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대입 수능이 국·영·수 중심으로 짜였고, 적은 시간에 비해 학습량은 많은 국사 과목을 선택해서 시험을 보는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드는 현실에서 역사교육 강화 목소리는 현실 논리에 밀려 공허한 메아리로 끝날 뿐이다. 역사 수업은 단순 암기에 그쳐서는 안 되고, 아이들 스스로 역사를 느끼고 생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도 충분한 시간을 두어 진지하게 다뤄야 할 내용이다. 그러나 주당 두 시간의 수업 시수로는 이런 요구를 감당하기 어렵다.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되면서 국사 수업 시수가 중학교는 주당 네 시간에서 세 시간으로, 고등학교는 세 시간에서 두 시간으로 줄었다. 지금의 현실은 한 교사의 표현처럼 ‘군대에서 고참이 이등병에게 고작 1천원을 주고서는 소주·라면·빵·과자를 모두 사오라는 꼴’과 같다. 예컨대 동북공정 문제만 하더라도 아이들은 “고구려사 왜곡하는 중국놈들 때려잡자”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이런 감정적인 대응을 극복하려면 역사수업에서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국제 질서와 한-중 관계 변화 흐름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학생들 스스로 건설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충분한 수업 시간과 교사가 확보되어야 가능하다. 교육부 정책 담당자들은 공청회나 토론회 자리에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과목별 교사 충원은 시·도 교육감의 권한이므로 역사교사의 부족 문제도 자신들에게 해결권이 없다고 답변한다. 그렇다면 지난해 교육부 장관이 발표한 ‘역사교육 강화 방안’은 무엇인가? 교육부는 실효성이 없는 미봉책으로 상황을 모면하기에 급급할 게 아니라 이제라도 역사교육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정책·제도적 장치를 만들고, 실천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여 사회·국민적 요구에 부응할 일이다.홍혜숙 부산 부흥고 교사·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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