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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1.06 17:15 수정 : 2006.11.06 18:26

왜냐면

-반론/ ‘미터법 전용 안하면 처벌이라니’를 읽고

지난달 31일치 ‘왜냐면’에 실린 ‘미터법 전용 반대’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오랜 옛날에도 하나의 국가가 안정되는 단계에서 각종 도량형을 통일하였고 각 지역에서는 이에 대한 혼란이나 반발이 있었으니 지금의 논쟁은 그 뿌리가 깊은 셈이다. 진시황은 수레바퀴의 폭을 통일시켰는데 권력에 따라 더 큰 수레를 타고자 했던 제후들의 비난을 샀다. 그러나 진시황의 판단은 수송에 편리를 제공했고 진 제국이 멸망했지만 한 나라 시대에도 계승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도량형의 통일은 강력한 중앙집권 제국의 성립이나 왕권의 강화를 들여다보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지나치게 강압적인 정책은 독재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앞의 글은 종목과 지역에 따라 다른 계량 단위를 예를 들면서 그 단위가 일관성 있지 않고 모호하다는 걸 인정했다. 그리고 산업 표준화에 따라 계량단위를 표준 미터법으로 일원화하자는 정부의 취지에도 동의했다. 그럼에도, 단지 오랜 세월 국민생활에 뿌리내린 전통적인 계량 단위를 강제퇴출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가 간 무역 장벽이 무너지고 있는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시대에 계량 단위가 이렇게 일관성이 없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혼란이 국가적인 경쟁력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문제가 있다면 지나친 처벌 위주의 정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관습적으로 쓰이고 있는 전통적인 계량 단위를 하루 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터법을 교육받은 세대들은 오히려 전통적인 계량단위보다 미터법에 익숙하다. 비단 젊은 세대뿐 아니라 국민 대부분이 실생활에서 미터법을 편하게 사용하고 있다. 사람의 신장을 말할 때 자연스럽게 센티미터 단위를 쓰고, 아령을 살 때 킬로그램을 물으며 음료수를 살 때 리터 단위로 그 양을 짐작한다. 그런데 오히려 경제 생활에는 표준화된 미터법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럼 불편을 무릅쓰고 전통적인 계량단위를 고수하고 있는 분야는 왜 그런 관습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 단지 ‘오랜 관습’이라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상거래에서 관습적으로 과거 계량단위를 사용하는 것은 금전적으로 이득을 취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식당에서 육류를 주문할 때 소비자는 1인분이 약 200그램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1인분을 150~160그램으로 하는 곳이 많고 고급 품목에 대해서는 140그램, 심지어는 120그램을 1인분으로 사용하는 곳도 있다. 즉, 파는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소비자에게는 사실상 선택권이 없다. 게다가 어떤 음식은 한 사람이 1인분이면 충분하고 어떤 음식은 2인분, 3인분을 먹어야 한 끼 식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몇 인분’이라는 단위는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평이나 근 등 다른 계량단위도 역시 소비자에게는 불리하다. 미터법으로는 소수점 이하까지 정확하게 표기할 수밖에 없는 단위를 대충 ‘올림’ 해서 몇 평, 몇 근 하는 식이니, 계량을 정확히 하는 양심적인 상인은 손해를 보는 상거래 구조다. 실제 생활에서는 미터법이 광범위하게 쓰이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 상거래에서 과거의 계량법이 환영받는 것은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손해를 끼친다.


이와 같이 불합리한 점을 고치려고 하는 정부의 방침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상거래에서 과거 계량 단위를 고수해서 이익을 취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나치지 않는 범위에서 강제성을 띠지 않고는 제도의 정착이 힘든 노릇이다. 더구나 애국가 가사, 삼척동자 운운하는 것은 억지스런 비아냥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현실에서 미터법의 전용은 마치 농산물을 구입할 때 원산지를 보고 믿고 구매하듯이 경제 생활의 신뢰에 관한 문제이며 해결해야 할 과제일 뿐이다.

김기현/대구광역시 수성구 노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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