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지난달 16일 건설교통부는 파주 새도시 중심부에 조성하겠다던 대체농지 20만평(애초 면적의 13%)을 없었던 일로 하고 모두 택지로 개발하겠다고 결정했다. 이는 전형적인 아파트 분양 사기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나는 애초 발표된 파주 새도시 계획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새도시 한가운데 펼쳐진 너른 들판에서 농민들이 농사를 짓는다면, 아파트 주민들이 아이들과 손잡고 한 뼘이나마 텃밭을 돌볼 수 있게 된다면, 하다못해 주말농장이라도 가꿀 수 있게 된다면 꽤 괜찮은 새도시가 되지 않을까.’ 일산 새도시의 인공 호수공원조차도 아쉬운 대로 기갈 든 시민들의 쉼터가 되는 것을 보면서 파주 새도시의 청사진에 안도감마저 느꼈다. 내가 이 지역의 지도를 바꾸며 환경을 파괴하는 파주 새도시 계획을 그나마 용서하기로 작정한 것은 그런 미련한 상상력에서였다. 주택공사가 애초에 발표한 파주 새도시 청사진을 최근 다시 읽어 보았다. 나의 상상이 주관적 기대는 아니었나 확인해 보고자 함이었다. 아니었다.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환경시범도시’, ‘환경친화적 자족도시’, ‘자연순응형 녹지공간의 전원도시’, ‘생태도시’ 등의 말들이 또렷이 적혀 있었다. 저수지와 대체농지를 연계하여 수로와 습지, ‘농업생태공원’이 어우러진 ‘물순환형 청정도시’를 조성하겠다는 장밋빛 청사진이었다. 20년 묵은 나무의 15%를 원형으로 보존한다는 계획도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저수지와 대체농지를 연계하여 수로와 습지, ‘농업생태공원’이 어우러진 ‘물순환형 청정도시’를 조성하겠다는 장밋빛 청사진은 대체농지 20만평을 없었던 일로 하고 모두 택지로 개발하겠다는 결정으로 물거품이 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계획은 한낱 부도수표가 되어버렸다. 20년 묵은 나무의 3.5%만을 남기겠다는 주공의 계획에 대한 환경부의 침묵 속에서 그 불길한 징후는 이미 가시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농지 20만평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결정으로 물거품이 된 것이다. 한 뼘의 땅에라도 더 아파트를 지어올려서 이익을 뽑아내야 한다는 냉혹한 자본의 논리는, 나 같은 사람들의 ‘섣부른’ 꿈이 설 자리를 남겨두지 않았다. 나아가 우롱했다. ‘분양원가를 낮추게 될 것’이라는 그럴듯한 수사로 인구의 절반에 이르는 집없는 서민의 꿈마저 사기에 동원하면서 말이다. 그들이 진정 서민들의 집값을 낮추고자 눈물을 머금고 그런 결정을 한 것인가. 진정 그렇다면 이렇게 명분을 내팽개치는 졸렬한 방법말고 더 떳떳한 방법이 있다. 분양원가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주공의 이번 결정은 이미 분양된 아파트에 입주하게 될 주민들에게는 분양 사기나 다름없다. 최근 이 파주 새도시에서 분양된 ㅎ아파트 값은 인근 시세보다 30∼40%나 높다. 한 평에 1300만원을 주고서라도 이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들의 희망은 무엇이었겠는가. 새도시가 환경친화적으로 조성된다는 기대도 분명 있었을 게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약속을 휴짓조각으로 만들어 버리면 결과적으로 비싼 값에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들은 사기를 당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 농림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건교부와 주공의 약속 파기가 가능해진 것은 감사원의 중재 때문이었다고 한다. 도대체 감사원이 공공기관의 약속 파기를 흥정한 이유가 뭔가? 행정 집행은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되어야 한다. 감사원이라면 더욱 그런 윤리에 충실해야 할 기관이다. 그런데 이렇듯 거간꾼 같은 행태를 보인 데는 뭔가 속내가 있을 듯하다. 감사원은 누가 어떤 과정으로 중재를 했는지 떳떳이 공개하기 바란다. 농림부도 애초에 무슨 이유로 반대했으며, 결과적으로 어느 부서 누구의 최종 책임 아래, 어떤 근거로 이 중재를 받아들였는지 명백히 공개해야 할 것이다. 환경부는 사업 타당성 검토 조건 위반에 침묵하고 있는 이유와 대체농지 조성 포기에 따른 입장을 밝히고 그동안 진행된 환경 협의를 전면적으로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이현숙/파주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