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11.13 17:42 수정 : 2006.11.13 17:50

왜냐면

나는 초등학교 교사다. 벌써 10년이 되었다. 올해는 한 과목만 가르치는 교과전담 교사를 하고 있다. 전체 49명 중 5명이 교과전담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 ‘내가 지금까지 수업을 위한 연구를 하고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를 괴롭힌다. 이런 자문을 이제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교과전담 교사로서의 올해 수업연구가 진짜 수업연구인 것 같고, 이전까지 했던 수업연구는 그저 교재만 살펴보는 정도의 가짜 연구였던 것 같은 생각 때문이다.

초등교사 대부분은 국어·도덕·사회·수학·과학·음악·미술·체육·영어·실과 중에서 8과목 이상을 매주 25∼30시간씩 가르친다. 점심시간, 쉬는 시간, 청소시간을 포함해서 보통 오전 9시에 수업이 시작해서 오후 3시면 아이들과의 일과는 끝이 난다. 아이들이 하교한 뒤 과제 검사 1시간, 학교 업무 1시간 정도를 보내면 퇴근시간인 5시가 된다. 무리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다른 직장에 견주어 이른 퇴근 시간일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 보면 매우 중요하면서도 위태로운 부분이 있다.

초등교사는 매시간 다른 내용을 가르친다. 초등교사가 일주일에 28시간을 가르친다면 이 28시간은 모두 다른 내용으로 채워진다. 어떤 때는 영어 과목 중 회화가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사회과목 중 고려사가 되기도 하며, 어떤 때는 과학 과목 중 수소발생 실험이 되기도 한다. 강의식 수업이라면 일주일에 28번의 각기 다른 강의를 하는 셈이고, 토론식 수업이라면 일주일에 각기 다른 28번의 사회를 봐야 한다. 중계초등학교의 반 평균 학생 수는 36명인데, 이런 학교에서 개별 학습에 나선다면 28시간×36명인 1008개 분량의 역할과 지도 임무가 매주 초등교사에게 주어진다.

연습 없이 경기에 나서는 운동선수가 없고, 준비 없이 강의를 하는 이도 없다. 우리가 하는 많은 일들은 그 준비단계에 해당하기도 한다. 특히 수업에선 동기를 부여하고 지식을 가르치고 가치를 추구하는, 매우 복잡한 요인이 서로 얽혀 있고, 교사의 구실이 핵심적이기에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초등교사들은 거의 준비하지 못한 채로 매주 28시간을 수업상황에 내몰린다. 그 속에서 과학을, 영어를, 체육을 가르치며 자주 실패하고 당혹해한다.

교사의 부족한 수업 준비, 완벽하지 못한 수업은 학교 교육의 질을 떨어뜨린다. 정교한 수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교사들도 더 즐겁고 보람있는 수업을 경험할 기회를 잃어간다. 학부모의 만족감도 떨어진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교사에게 있는 것일까? 어느 유능하고 성실한 집단 1만명에게 매주 28번의 서로 다른 내용의 발표거리를 준비해서 매일 5∼6시간씩 발표하라고 해 보자. 일주일만이 아니라 1년을 매주 다르게 준비하게 하자. 매일 36명분의 일정한 과제검사나 학교업무 등 여러 업무를 주어 퇴근 시간 이후에나 제대로 발표 준비를 할 수 있게 해 보자. 그 집단의 몇%나 매번 완성도 높은 발표거리를 준비하고 발표할 수 있을까?

준비되지 못한 수업에 대한 책임은 초등교사에게 있기보다는 오히려 수업을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하는 초등교육 체제에 있다.

먼저 초등교사의 수업시수를 20시간 미만으로 줄여야 한다. 그래서 1시간 수업에 최소 1시간을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수업 보조자 및 행정 전담직, 기능직을 더 뽑아 학교 관리를 이들에게 전담하게 해야 한다. 교사들이 학교 운영이나 행정업무 부담 없이 수업 준비와 수업에만 집중하게 해야 한다. 적절하지 않은 환경을 그대로 놔둔 채 교사 개개인의 열성과 헌신만 요구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초등교사의 수업시수를 20시간 미만으로 줄이고 수업 보조자 및 행정 전담직, 기능직을 더 뽑아 학교 관리를 전담케 해야 한다.

대다수 국민이나 기업은 한결같이 우리나라가 기대할 수 있는 자원은 오직 인력밖에는 없다고 한다. 정치권도 여야 없이 공교육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렇다면 공교육 강화를 교육의 실질적인 현장인 수업의 질을 높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김두희/서울 중계초등학교 교사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전체

정치

사회

경제

지난주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