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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2.11 17:40 수정 : 2006.12.11 17:40

왜냐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 스님이 남긴 유명한 말씀이다. 요즘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접하면서 스님의 화두가 떠오른다.

광우병에 걸릴 우려가 있는 쇠고기에 대한 미국의 수입재개 압력이 점입가경이다. 지난 8월 미국 의회 의원 31명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개방하라는 협박성 편지를 보내 온 국민에게 수치감을 주더니, 지난주 미국 몬태나주에서 열렸던 한-미 자유무역협정 5차 협상은 아예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협상’으로 전락했다.

한-미 양국은 한국이 ‘뼈 없는 살코기’만 수입하기로 상호 합의했다. 뼈가 섞였으니 반송·폐기한 우리 정부의 조처는 적절한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재경부나 외교부 사람들 일부가 사석에서 검역 기준이 너무 엄격한 것 아니냐며 오히려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차기 상원 재무위원장으로 내정된 몬태나주 출신의 맥스 보커스 의원은 협상 시작 전인 3일 양국 수석대표를 초청한 오찬에 생뚱맞게 카우보이 모자에 청바지와 웨스턴 부츠를 신은 ‘카우보이’ 10여명을 도열시키고, 몬태나산 쇠고기 스테이크를 썰며 미리 연습한 한국말로 “맛있습니다”를 수차례 연발하는 쇼를 연출했는가 하면, 웬디 커틀러 미국 수석대표도 연일 발언의 강도를 더하고 있다.

한마디로 방귀 뀐 놈이 성내는 꼴이다. 인간사가 그렇듯 국가간의 통상협정 또한 신의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한-미 양국은 지난 1월13일 수입 위생조건을 논의하면서 한국이 ‘뼈 없는 살코기’만 수입하기로 상호 합의했다. 분명 뼈 없는 살코기만 수출하기로 했는데 뼈가 섞였으니 합의사항을 위반한 쪽은 미국이며, 반송·폐기한 우리 정부의 조처는 적절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사과는 못할지언정 부당한 통상 압력만 행사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런데 요즘 정부 일각에서는 묘한 기류가 있다고 한다. 재정경제부나 외교통상부 사람들 중 일부가 사석에서 농림부 사람들에게 “3차분에서 검출된 뼛조각은 0.3∼1.0㎝에 불과한데 한-미 관계나 자유무역협정 등을 고려할 때 검역 기준이 너무 엄격한 것 아니냐”며 오히려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농림부나 검역원도 어느 정도 크기까지 뼛조각으로 볼 것이냐에 대한 기준이 없어 곤혹스러워한다고 한다.

미국은 의회, 농무부, 축산업계가 똘똘 뭉쳐 어떻게라도 자국산 쇠고기를 팔려고 하는 마당에 우리 내부에서 자중지란을 일으켜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우선한다’는 원칙을 틀어쥐고, 수입 문제는 합의한 사항대로 이행하면 된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이 검증되기 전까지는 국민들에게 내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해 많은 이들이 회의적이다. 미국 농무부도 인정했듯이 미국에서 도축되는 전체 소의 1%만이 광우병 검사를 하고 있어, 뼈가 있든 없든 99%의 미국 쇠고기가 안전성 검증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이 객관적 사실이다. 더욱이 12월6일 미국 질병통제센터는 미국에서 세번째 인간 광우병 환자가 발생했다고 밝히는 마당이니 당국은 당장 미국산 쇠고기 전체에 대해 수입을 중단해야 마땅하다.


우리 정부가 부득불 미국 쇠고기를 수입해야 한다면 합의한 대로 ‘뼈 없는 살코기’만 수입하면 된다. 제아무리 작은 0.1㎝의 뼛조각이라도 뼈가 분명하기에 반송조처를 하면 되는 것이다. 우려가 되는 것은 우리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타결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 ‘뼛조각의 기준을 마련하자. 엑스레이에 검출되지 않는 크기는 살코기로 간주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못 이기는 척 슬그머니 수용해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열반하신 성철 스님께 ‘요 산은 작으니깐 그냥 물로 합시다’ 하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제아무리 작아도 뼛조각은 뼛조각일 뿐, 살코기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이영수/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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