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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2.28 17:34 수정 : 2006.12.28 17:34

왜냐면

‘조선족!’, 이 말은 이제 내 삶의 주무대인 중국 땅을 넘어서 고국인 한국에서까지도 익숙한 낱말로 자리잡았다. 재중동포와 한국의 인적교류가 깊어진 자연스럽고 다행스런 결과다. 한편으로 ‘조선’ 및 ‘족’이라는 어감에 대한 거부반응도 한국 사회 곳곳에 산재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런 가운데서도 ‘조선족’이라는 호칭보다는 ‘재중동포’또는 ‘중국동포’로 불러야 한다는 고마운 문제 제기와 의논도 활발했다.

그럼에도 한국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조선족’ 낱말의 사용 실태를 두고서는 큰 우려를 품게 된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범죄 관련 보도에 자주 나오는 ‘조선족 일당’이라는 표현이다. 그 표현에 불쾌감을 느끼는 게 단순히 나 자신의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비롯한 것일까? 그 관련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2005년 중국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되었던 ‘하남인 사건’이다.

‘조선족’이라는 낱말이 언론에서 ‘조선족 일당 ○명 구속’ 같은 관용문구로 정착한 채 범죄 관련 보도에서 상용된다면, 한국 사회에서 땀흘리는 식당 아주머니, 일용직 아저씨들, 고국에 찾아와 열심히 공부하는 조선족 유학생들도 그 피해자가 될 것이다.

중국 남방 선전(심천)시의 어느 가두파출소(동네 파출소)에서 담당구역의 길목에 “‘하남적’(河南籍) 협박공갈 일당을 견결히 타격하자”라는 구호를 내걸었던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허난(하남)성 일부 사람들이 이 지역에서 잦은 협박공갈 사건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나, 이 사건은 중국의 큰 언론들과 인터넷 토론방을 뜨겁게 달구는 화제로 떠오르면서 파장은 커져가기만 했다. 언론의 비판에 힘입어 허난성의 두 변호사는 문제의 경찰서를 대상으로 명예훼손 소송을 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했다. 결국 경찰 쪽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발행되는 신문을 통해 사과를 하는 등 적극적인 사태수습에 나서 법정화해로 마무리되었다. ‘하남인 사건’은 지역차별 논쟁으로도 뜨거웠지만, 결국은 어느 특정 인간집단의 자존심과 명예를 존중해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은 결론을 다시 한번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확인하게 한 계기이자 뜻깊은 사건으로 중국 사회에 자리잡았다.

좀 다른 얘기지만, 일본 언론은 주일미군의 범죄사건 보도에서는 ‘흑인 병사’라는 낱말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 병사’만으로도 충분히 사건 내용을 알릴 수 있는데도 ‘흑인 병사’라고 하는 것은 특정 인종에 대한 차별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우연히 한국인 범죄가 발생하더라도, 언론은 ‘한국인’이라 특정하지 않고 ‘외국인’으로 보도한다. 범죄자의 국적을 밝히는 의미와 그런 보도로 사회적 편견이 파급될 우려가 있다는 부정적 영향을 저울질할 때, 후자에 훨씬 신경을 써야 한다는 자각이 돋보인다. 물론 굳이 국적을 밝히는 것과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 필연적으로 연관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확실하게 염두에 두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언론이 조선족 출신의 범죄를 ‘외국인 범죄’ 혹은 ‘중국인 범죄’가 아닌 ‘조선족 범죄’로 표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안전하고 고요한 동네에 뛰어들어 그 안녕을 깨뜨리는 다른 집단의 범죄자들이 기존 주민들에게는 이물질처럼 껄끄러운 존재로 인식되는 것은 자연스런 반응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 전체 사회, 전세계를 향한 담론으로 되어버릴 때, 그것은 특정 민족이나 국적 보유자 전체가 범죄자 집단인 듯한 뉘앙스를 가지는 보도로 읽히기 십상이다.


‘조선족’이라는 낱말이 언론에서 ‘조선족 일당 ○명 구속’ 같은 관용문구로 정착한 채 범죄 관련 보도에서 상용된다면, 한국 사회에서 땀흘리는 식당 아주머니, 일용직 아저씨들, 고국에 찾아와 열심히 공부하는 조선족 유학생들도 그 피해자가 될 것이다. 물론 그들은 거대한 힘을 행사하는 한국 언론에 대항할 엄두도 못 내는 침묵하는 피해자들이다.

특히 더 주목해야 할 이들은 한국 밖의 조선족 피해자들이다. 조선족 절대다수는 중국 땅에서 삶의 터전을 일궈간다. 그래서 ‘조선족’은 그 낱말이 생겨난 그날부터 중국 땅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민족 얼이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명칭이다. 다시 말해 조선족이란 중국 땅에서 살아가는 200만 동포가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거대한 중국을 향해 자랑스럽게 내미는 명함이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러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위성방송으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마을의 가족과 함께 울고 웃으며, 고국에 마음이 달려가 있다가도 ‘조선족 일당’ 운운하는 뉴스를 보면 몽둥이로 얻어맞은 것처럼 남모르게 슬퍼진다.

고국의 매스컴에 바란다. 한국 속의 조선족이 애써 가꾼 이미지의 파괴를 걱정해주고, 나아가 한국 밖의 중국 땅에서 자랑스럽게 ‘조선족’을 머리에 이고 사는 동포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배려해 달라고.

채동운/일본 홋카이도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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