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08 18:03
수정 : 2007.01.08 18:03
왜냐면
정부는 지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5차 협상에서 전문직 자격 상호인정 실무협의체 구성에 관한 부속서 원칙에 합의했다고 한다. 한국은 이미 미국에 의사·간호사·건축사 등 11개 전문 분야의 자격 상호인정을 요청했다. 미국은 아직 한국에 구체적인 요청이나 양허 분야를 밝힌 것은 없으나 1월15일부터 열리는 6차 협상에서 구체적인 요청을 해 올 것으로 보인다.
결국 떠올리기 싫은 가정이지만 미국과 자격 상호인정을 하는 순간 높은 입시 경쟁 탓에 한국에서 의대에 입학하지 못한 많은 한국인이 한국과 상호 인정되는 각국의 자격증을 따려고 현지에서 교육을 받고 외국자격을 획득하여 한국으로 돌아오는 기현상만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보건의료 전문직 상호인정은 얼핏 선진국 시장에 우리 인력이 진출해 수익을 올리고,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여 모국에서 활용한다는 장점이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뒤에는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서비스 무역에서 선진국일수록 자본〉기술〉기자재〉인력 차례로 투자에 관심을 기울이고, 저개발국일수록 그 역순으로 관심을 기울인다. 최근 선진국들이 인력시장에 해당하는 자격의 상호인정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그들의 속내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자본 자유화를 통해 저개발국에 자본 투자를 아무 제한 없이 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했다. 한국도 외환위기(국제통화기금) 사태를 겪으면서 이미 의료를 포함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본 투자를 자유화했다. 따라서 선진국들은 자본 투자에 더해 기술과 기자재를 팔기 위해 그들의 제도를 수출하고자 하며, 이때 자격의 상호인정이라는 틀을 이용한다. 예컨대, 미국 의사 면허를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면 가장 공격적이라는 미국식 의료가 세계를 장악하게 되는 것이고, 이에 따르는 기술과 기자재는 부수적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이 얻는 이익은 무엇일까? 한국의 보건의료 인력이 미국의 자격을 인정받는 것은 단순한 학력부터 최종적으로는 면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단계가 있을 수 있지만, 면허를 인정받는다 해도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한국인은 여전히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자격의 상호인정과는 전혀 별개로 미국의 수요를 토대로 필요한 경우에만 취업 비자를 발급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떠올리기 싫은 가정이지만 미국과 자격 상호인정을 하는 순간 미국식 교육을 채택하고 있는 많은 나라들의 자격을 서로 인정해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며, 이는 높은 입시 경쟁 탓에 한국에서 의대에 입학하지 못한 많은 한국인이 한국과 상호 인정되는 각국의 자격증을 따려고 현지에서 교육을 받고 외국 자격을 획득하여 한국으로 돌아오는 기현상만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국 국내 의료의 수요와 공급 균형을 무너뜨릴 것이다. 곧, 한국 의료시장은 미국식의 고비용 저효율 체제로 바뀔 것이다.
또 하나, 의료는 사회문화적 배경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환자는 지역과 사회·문화적 배경이 다름에 따라 각기 다른 질환을 앓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의과대학은 지역에서 요구하는 의료인력 양성을 일차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은 우스갯소리지만, 1960년대 미국식 교육을 받은 의사는 한국인이 많이 먹는 된장이 위암 발병의 첫째 요인이라고 꼽은 적이 있었다. 이러한 편견이 고쳐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반대로 한국에서 교육받은 한국 의사가 과연 미국 사람이 앓는 질환을 제대로 잡아낼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인류가 과거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질병이 등장하거나 낯선 질환으로 고통 받을 때 인류를 지켜내는 것은 탄력적 대응을 가능케 하는 다양성이다. 의료도 마찬가지다. 의료에서 다양성이란 지역과 사회의 전통과 조화하는 다양한 일차 의료를 발전시키는 일일 것이다.
미국의 간호 인력이 부족하다고, 한국보다 높은 수입이 보장된다고, 한국 간호사에게 미국식 간호 교육을 시키거나, 한국은 미국 시장에 진출해야 하기에 중국의 간호사에게 한국인의 건강을 일부나마 맡기겠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 지금이라도 정부 당국과 관련 업계는 ‘휴대폰 팔아 쌀 사온다’는 식의 단견에서 벗어나, 지역과 사회가 필요로 하는 보건의료 체계 확립에 힘써야 할 것이다.
박왕용 /한의사·경원대 한의과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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